동시화개절에 절에서 머물다
절(寺刹)은 부처님도 스님들도 대중들도 절로 절로 발길이 다다르는 길이며, 머묾이었다. 절에서 우리의 마음은 청아해지고, 경건해지고, 넉넉해지고, 편안했음에 언제부턴가 우리는 멀리, 조금씩 절에서 멀어져 버렸다.
현실은 예나 지금에나 시끄럽고 혼탁하다. 사람이 흐려놓은 물과 공기를 나쁘다고 한다. 그 나쁜 공기와 혼탁함에 잠시 쉬어가려 할 때, 절에서 머문다.
부처님 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스님들께 법문을 듣고, 자나 깨나 부처님 생각을 하며 실천을 하기 위해 절에서 머무르는 사람들
서울에 벚꽃비가 내리고 새 잎이 파르스름한 빛으로 채색을 하고 있는 요즘, 도심의 절에서 머무르던 사람들이 축령산 자락의 백련사로 향했다. 이름하여 구룡사 회장단 백련사 템플스테이.
남녘에 매향 날려 올 때 서울에는 추위가 가시고, 산수유가 앙증맞게 인사를 하고, 개나리가 고개를 내밀고, 목련이 봉우리를 터뜨리고 ,벚꽃비가 내리고, 진달래 웃던 봄의 서막이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기상관측 이후 처음으로 3월 기온이 20도가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움츠리고 있던 꽃들이 화들짝 한꺼번에 열렸다.
올 해는 무슨 일일까? 동시화개(同時花開)하는 봄날이.
噫라
菊之愛(국지애)는 陶後(도후)에 鮮有聞(선유문)이요
蓮之愛(연지애)는 同予者何人(동여자하인)고 牧丹之愛(모단지애)는 宜乎衆矣(의호중의)로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 이후에 들어본 적이 없으며,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와 같은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모단을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많을 것이로다."하고,
송나라 염계 주돈이 선생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에 대해 군자의 고고함을 은은하게 드러내었고, 불가에서는 진 흙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한 지 이천 오백 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하여 연꽃이란 이름이 들어 간 사찰이 유난히도 많다. 그 사찰 중에서 백련이 곱게 피는 가평의 백련사!
백련사 주지이신 승원스님께서 매달 한 번씩 구룡사에 오셔서 법문하실 때마다 “백련사에 오셔서 축령산 자락의 잣나무 숲길 한 번 걸어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드디어 이 동시화개절(同時花開節)에 도반들과 함께한 잣나무숲길.
겨우내 움츠렸던 숲에서, 봄기운에 못 이겨 밀려 올라오는 새싹들의 향연 속에 내 자신이, 우리 도반들이, 스님들이 함께 한 우리도 동시동화(同時同化) 된 봄의 전령임을 알았다. 가족을 위해 살아 온 것처럼 가족이 전부인 듯, 생색내며 살아 온 시간들이 참 우습다.
가족만이 나와 동체임을 인식하며 살았는데 백련사에 와서야 ‘나와 도반칭찬하기’, ‘내 인생이 한 달만 주어진다면’이란 주제를 통해 선관스님의 ‘나를 찾는’ 잣나무 숲속에 와서야 물소리, 바람소리, 꼬옥 안아 주시는 엄마 같은 선관스님의 숨결과, 내 숨결까지 이 모든 것이 나와 숲과 햇살과, 새싹과 더딘 발걸음을 맞추려는 도반들의 마음까지 모두가 가족임을, 그리고 “나”임을,….
숱한 인파를 몰고 다니는 김창옥강사의 말을 빌려 “그래 여기까지 참 잘 왔다.”
하늘을 향해, 세상을 향해 꿋꿋하게 세한(歲寒)에도 비록 시들지언정 잎을 떨구지 않는 잣나무처럼 참 잘 자라왔다.
반세기동안 자갈길 걸어서 폭신한 잣솔가지길 즈려밟기까지, 환한 벚꽃길 아래로 동시화개절에 참 잘 걸어왔다. 수고했다. 토닥토닥!!
***이 자리를 빌어 많은 세파에 지친 대중들의 쉼의 터를 넉넉하게 닦고 계신 백련사 주지스님과 자아을 찾기 위해 찾아 오는 많은 님들에게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선관스님과, 이런 계기를 만들어 주신 구룡사 주지스님과, 함께 걸어주신 회장단 불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