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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 교리 - 12연기(十二緣起)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2-06-25 (월) 15:30 조회 : 2334

12연기(十二緣起)

12연기(十二緣起)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와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와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는 연기법의 기본 원리를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초기경전에 보면 상황에 따라 12가지의 연기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연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정각(正覺)을 이루시기 전의 정황을 이렇게 회상하셨다. ‘정말 로 이 세상은 고통 가운데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는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 (중략) ‘노병사[老死]의 고통은 태어남[生]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남은 어떤 존재[有]가 있어서다. 그 존재는 집착이 모인 덩어리[取]이다. 집착은 애욕[愛] 때문에 생긴다. 애욕은 받아들임[受]에 의해 일어난다. 받아들임은 접촉[觸]에 의한 것이다. 접촉은 6가지 감각기관[六入]에 의해서이 다. 감각기관은 육체와 정신[名色]이 있기 때문이다. 명색은 의식[識]에 의해 생긴다. 의식은 의지[行]에 의해 일어 난다. 그 의지는 어리석음[無明]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알게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즉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가 소멸한다. 그리고 유가 소멸하면 생이 없어지고 생이 없으면 노병사가 없어지고 노병사가 없으면 수비고뇌(愁悲苦惱)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잡아함경』 제12권 285경 「불박경(佛縛經)」

12연기란 모든 괴로움을 떠나기 위해서 그 발생과 소멸을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 (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가지로 풀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12연기는 생 멸 변화하는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 교리의 근본 목적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苦) 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고통을 여의기 위함이 연기법이니 만큼 역 으로 위의 경전의 순서처럼 먼저 노사에서부터 12연기를 간단히 알아보자.

노사란 늙음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노사는 삶의 모든 괴로움을 총칭한 근심, 비애, 고통, 번뇌 [憂悲苦惱]를 말한다. 모든 존재는 생하면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노사의 모든 괴로 움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태어남[生]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다. 즉 삶의 고통은 태어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전 과정 즉 생노병사를 괴로움이라 한다.

그러면 생은 무엇이 있으므로 있는가? 생은 집착을 여의지 못한 존재[有]가 있어서다. 또한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실체가 있는 존재로 고착화시키다 보니 태어난 것은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을 맞게 된다.

존재는 어떻게 있는가? 집착 때문에 있다. 취는 집착의 의미로서 인간의 미혹한 생존은 집착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맹목적인 애증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뒤따라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키게 된다.

집착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애욕 때문이다. 애욕이란 갈애(渴愛)라고 하는데 보통 목이 타서 갈증이 나면 오로지 물을 구하려는 생각만 나는 것처럼, 항상 능동적으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애욕은 왜 생기는가? 받아들인 느낌과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임이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거움도 괴 로움도 아닌 느낌과 그 감수(感受)작용을 말한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등의 3요소가 만날 때 거기 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受)가 발생하는데 이 수 때문에 애욕과 갈애가 생기게 된다.

접촉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수가 있기 때문이다. 촉이란 지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인 힘이다. 모든 촉은 6근이 6경과 접촉하지 않으면 결코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촉에도 6가지의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 마음)에 의한 6촉(六觸)이 있다. 촉은 6입에 의해서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6입 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식(識), 명색(境), 6입(根) 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촉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는가? 그것은 6가지 감각기관(六入) 때문에 생긴다. 6입이란, 6근(六根) 혹은 6 처라고 하는데 이는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6입은 무엇으로 인하여 있는 것일 까? 명색으로 인하여 있다. 명색이라 함은 정신현상을 표시하는 명칭과, 그리고 물질을 나타내는 색을 합친 것을 의 미한다. 6입의 대상이 명색이다.

그렇다면 명색과 그에 대응하는 6입인 감각기관만 있으면 인식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상태에서 결코 인식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반드시 식이 있어야 한다. 죽은 사람이 꽃을 보거나 만질 수 없듯이, 식이 없으면 인식활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식은 명색이 있기에 존재하고 명색은 식이 있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6입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감각기관인 6입과 그 대상인 명색 그리고 인식 주관인 식 이 다 함께 갖추어졌을 때만이 사물과 접촉하는 인식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식이란 표면적인 의식뿐 아니 라 심층의식도 포함한다. 장미꽃을 볼 경우 장미꽃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에 장미꽃을 본 경험과 정보 가 심층의식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장미꽃을 보았다는 과거의 경험은 과거의 행위이다.

식은 어떻게 있는가? 행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행으로 인하여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행이란 이미 몸과 입과 뜻에 의해서 형성된 선행 정보들이다. 이를 신런막의(身 口 意)라 한다. 장미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미 입력된 장미꽃이라는 명칭도 개념도 없다. 물론 장미꽃이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기존에 형성된 다른 정보들과 조합하여 개념과 명칭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장미꽃과 비슷한 찔레꽃이라 인식할 수도 있다.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에너지의 형태로 행이 있지 않으면 상응하 는 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경험된 행위가 여력을 남기며, 지식정보, 성격, 습관, 소질 등의 에너지로 축적된다.

마지막으로 행은 왜 생기는가?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명(無明)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 지 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 제에 대한 무지이다. 괴로움은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팔정도 중에 정견, 즉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실히 체득하게 되면 무명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교의 핵심교리를 연기법의 개관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체법, 삼법인, 사성제 그리고 12연기의 순으로 알 아보았다. 사실상 어떤 교설을 먼저 살펴보더라도 연기법의 중심축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체법은 존재의 연기적 구 조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고, 삼법인은 존재 현상의 연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사성제는 연기적 관찰을 통한 괴로움의 극복을 제시하는 실천적 교설이다. 그리고 12연기는 연기법 자체를 심층 분석하여 고통의 삶과 해탈의 삶 을 구체적으로 밝힌 가르침이다. 이처럼 불교 교설의 중심축은 연기법이므로 어떤 교설이라도 연기법의 틀 안에 있 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중관, 유식, 천태, 정토, 화엄 등 다양한 교설들이 시대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새로운 구성과 확장된 개념으로 불교 교설을 재정리했다 해도 연기법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체법, 삼법인, 사성제 그리고 12연기를 잘 외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없는 교설이라면 고급 지식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고상한 지식에 불과하다. 불교 교설은 제대로 실천했을 때 온전한 체험의 세계에 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종단의 각 불교대학이나 사찰의 교리강좌, 혹은 교리해설서를 통해서 교리를 통달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한낱 지식에 지나지 않으며 연기법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라 할 수 없다. 그 러므로 이 연기법을 축으로 한 위의 교설들을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실천 수행할 수 있는지 를 생각해 보자.

출처: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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