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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스님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5-07-29 (수) 21:11 조회 : 2822

하늘 가득 짙은 구름이 드리워져 날은 춥고 바람은 거세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 산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발가락 끝에까지 햇빛이 닿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볕 한 줌이 그립다며 발을 종종대다가 하늘을 보니 태양은 거기 그렇게 무심히 떠 있다. 태양 아래에 서서 태양이 없는 양 태양이 그립다 했으니, 어리석은 중생은 종종 대던 무릎을 탁쳐 볼 뿐이다. 내안의 구름은 언제쯤에나 걷히려나 막막할 뿐이다.

“내 안에도 부처님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 그것이 신심입니다.”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고 저 하늘에 해가 없겠는가. 해는 늘 그 자리에 부처님처럼 자리하고 있으니 내 안의 구름들을 걷어내면 태양이 보이듯 불성 또한 드러날 것이란 말씀이다. 현재의 나에게서는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서서히 불성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꾸준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승원 스님은 견성見性, 그것은 자기 안의 부처님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캄캄한 밤이어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저 너머엔 태양이 있단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환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그것이 곧 깨달음이 아닐 것인가.

“수행자는 깨달음의 길로 가야겠지만, 옛 노스님들이 그러셨어요. 내가 뭐 큰 그릇인가, 금생엔 다음 인연에 성불할 좋은 인연의 종자를 심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난 보살은 영원한 현재진형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금생에 깨달아서 부처님이 되겠다는 큰 원력도 좋지만 금생에 큰 죄업을 짓지 않고 착실하게 중노릇 잘 하고 살면 다음 생엔 좋은 인연을 만나 성불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다.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일부터 차근 차근 해결하면서.

“예전에는 저녁이 되면 스님들이 울었답니다. 내가 오늘 또 중노릇을 잘못했구나 싶어서.”

항상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형상이 세속 사람과 다르니 내가 스님이구나 라고 느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위치에 있든 본분을 잃지 않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고 이해하고 지키는 것, 스님은 그 자체가 수행이 아닐까 한다. 모든 문제는 제안에 있기 마련이니까.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 사자 몸 안에 벌레가 있어 그것이 사자를 다 잡아 먹는 거예요.”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밖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제 근본에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 볼 것이며, 남을 탓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말씀이다. 문득 물으신다.

“태어날때 정신차리고 나왔나?”

그럴리 없다. 정신없이 나왔다. 그러니 기억도 안 난다. 또 물으신다.

“지금 정신 차리고 사나?”

그럴리 없다. 정신없이 산다. 그러니 눈물도 안 난다. 또 물으신다.

“정신없이 죽을건가?”

정신 없이 죽으면 다음 생에 또 정신 없이 태어나겠지.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성성하게 화두를 들고 계신다.

“늘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해. 항상 자기 자신을 놓지 않는 것,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내 화두라면 화두지.”

스님은 동진 출가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마을에 계시던 스님을 따라나섰다.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늦은 봄밤, 범어사에 들어가 행자실에서 식은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그날 바로 새벽 예불을 드렸다. 스님 그림자만 봐도 오금이 저리던 시절이었으니, 어린 나이에 감히 나가겠다는 생각도 못하고 시키는 공부만 하며 살았다. 그러고는 그냥 좋아서 눌러앉아 살다보니 30여년이 흘렀다.

범어사에서 출가해 범어사 강원, 해인사 강원, 동국대 대학원까지 졸업하며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강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한국 불교가 현대화된 포교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과 포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1988년도에 강남의 한 빌딩에 자그마한 포교원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그때가 스님 나이 31세 무렵이었지만 동진 출가했으니 스님으로 살아온 지 십년이 훌쩍 넘은 시기였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설계하며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아이들 천자문 가르치면서 시작된 포교원은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 탓에 한계가 많았다. 그렇게 3년 여를 보내고 강남 봉은사에서 5년쯤 살았다. 현재 봉은사 야간 불교대학의 시작이 스님이 그곳에서 만든 거사불교대학이다. 그 시절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법회를 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포살을 행했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죄를 짓고 살잖아요. 그러니 부처님의 제자들이 한달에 한 번이라도 부처님 앞에 죄를 드러내고 참회하는 거죠.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새 마음을 갖는 거죠.”

5년 동안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주 모여 그렇게 승원 스님의 말씀을 듣고 포살을 했다. 그렇게 참회하고 복을 닦았다.

일연 스님은, 절을 수복멸죄지처修福滅罪之處라고 했다. 그 뜻과 같이 승원 스님은 백련사 대웅전 법당에 참제업장십이존불懺除業障十二尊佛을 모셨다. 죄를 지은 자든 죄를 짓지 않은 자든 도량에 들어서면 부처님의 제자인 법, 그들이 모두 참회하고 법을 닦고 법을 행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치 바다가 백천의 강물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듯 부처님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승원 스님은 그렇게 도량이 모든 중생들을 순화시키고 새로운 삶을 얻게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련사는 8년여 전에 스님이 터를 잡고 새롭게 건립한 절이다. 터가 널찍하고 시원하니 절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도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원력이란 말은 너무 커서 소망이라고 하고 싶은데, 도시와 산중이 연결되고 포교와 교육과 신행과 수행이 어우러지는 일원화된 작은 체계를 갖춰 보려고 해요.”

스님은 포교와 교육과 신행과 수행이 한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이 절에서 기도는 저 절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한 절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종단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이전에 스님은 신도들에게 불교 신자가 되는 다섯 가지 요건을 말한다. 첫째는 수계해서 법명을 받을 것, 둘째는 원찰願刹이 있을 것, 셋째는 정기적으로 법회에 나갈 것, 넷째는 수입의 일부를 기쁜 마음으로 보시할 것, 다섯째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할 것. 이것을 지켜야만 불교가 취미가 아닌 종교일 수 있다는게 스님의 말씀이다.

“해탈이라는 교리가 사람을 너무 방만하게 만들어요. 불교는 틀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틀의 개념에서 벗어 났을 때에야 틀이 필요 없는 것이지 일정 기간 동안은 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틀도 없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거지.”

스님은 원효 스님의‘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을 즐겨 읽는다. 늘 초발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승원스님은 항상 중이 무엇인지 알고 그 신분에 만족하고 그 신분을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려고 한다.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항상 그 직분을 지켜야 하는 것은 승속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지침이 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스님은‘삼라만상 개오사皆吾師’라는 말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산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세상 모든 것에게 다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린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는 교만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것이지, 마음을 고쳐 먹으면 삼라만상이 다 자신의 스승이 된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관조스님의 맏상좌로서, 스님의 모든 유품을 간직하고 있다. 70만컷이 넘는 필름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관조 스님의 사진은 모두 보물급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절집 안의 건물, 벽화, 조각, 자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아둔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관조 스님의 사진은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고 있어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어진다. 관조 스님은 포교의 일환으로 셔터를 선택했다고 하셨다. 그랬던 만큼 스님의 사진은 그저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선방에서 참선하듯이 당신은 치열한 노력을 하셨어요. 촬영 나가실 때 제가 많이 모시고 다녔는데, 춥거나 덥거나 새벽이든 밤이든 똑같은 장소에 수십 번가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졌어요.”

관조 스님의 사진 세계를 절제, 단순, 함축성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실제로 스님은 사진에 제목을 단 적이 없단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신이지만 그건 보는 자의 몫이라고 하셨다. 처음에 스님이 카메라를 손에 들었을땐 욕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전통 사찰에서 카메라를 든 스님은 이해 되지 않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끝끝내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조용조용 셔터를 누르며 사진에 부처님의 설법을 담았다. 그러한 수행을 통해 우리의 선구자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젠 거리에서 카메라를 손에 든 스님을 봐도, 보드를 타는 스님을 봐도,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스님을 봐도 볼거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제가 관조 스님의 사진들을 잘 관리하고 분리, 정리해서 자료화 시키려고 해요. 스님의 원력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잘 해야겠죠.”

스님은 먼 곳에 있는 얘기가 아닌 지금 손닿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자리에 있는데,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엔 그 소임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 이 스님의 뜻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금생을 걸어가는 것이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거듭해서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처음 스님을 뵙고 삼배를 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승복은 죄수복이야. 그 만큼 많이 참회하고 그 만큼 많이 봉사하고 그 만큼 남 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더 정진해야하는 신분인 거죠.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처님법을 만났으니 반은 성공한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기왕 사는 거 고민해봤자 소용없는 것들은 가차없이 툭툭 털어내고 걸어가며 사는 것이다. 서로에게 짜증내느니 좋은 얘기들이나 나누면서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좋고 기도하면 기도하는 대로 좋고, 스님 만큼 좋은게 없는 것 같아요.”

수행자는 산과 같은 고민들도 툭툭 털어버리고 웃는다. 미련도 없이 낙엽은 지고 그 낙엽을 밟고 구름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수행자의 하늘은 오늘도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

출처:인터넷 월간 해인 2007년12월[310호] 호계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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