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글 쓰는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전할 도리가 없다.
글(書)이란 같다(如)는 것이니, 사람의 뜻과 똑같이 어떤 일을 서술함을 말한다. 현생에 잊어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정갈하게 엮어 베끼고 순서대로 엮어 기록할 것이요 후대에 전해지도록 하려면 마땅히 몸소 글을 써서 집성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가르침의 기풍은 떨어지지 않게 되고 도道는 오랠수록 더욱 꽃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의 경전과 율법은 패다라 잎에 결집結集되었고 공자의 시詩와 서書는 대나무 줄기에 산정刪定되었으니, 만약 글쓰는 일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일은 성취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지자대사의 걸림 없는 변설은 단지 그 때의 근기根機에 유익하였으니, 만일 장안의 집필력이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에까지 유포되었겠는가. 그러므로 계빈국의 고승대덕인 반두달다는 새벽부터 낮까지 손수 1천 편의 게송을 쓰고 낮부터 저녁까지 입으로 1천 편의 게송을 외웠다. 다만 응당 부처님을 좇아 능히 이름자를 쓸 수 있게 할 뿐, 세상을 본받아 초서와 예서를 정교하게 하는 것은 삼가하여 하지 않도록 하라.
6,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 할 수 없다.
말을 올곧게 잘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말을 올곧게 잘하지 못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어기려 든다.《시경》은 칭찬하여 말하는 법과 비평하여 말하는 법을 갖추어 진술하였고 그 언어는 성조聲調와 운율韻律을 따랐으니,《국풍》은 도탑고도 중후하고《아송》은 온화하고도 부드러우며, 재치가 빛나고 기개가 청아하며 어휘가 풍부하고도 밝게 빛난다. 오래 익히면 곧 말과 논리가 저절로 빼어나고 가까스로 외우더라도 [말을] 머금고 내뱉음에 있어 속되지 않는다.
저쪽에서 이 세상(四海)의 습착치입니다라고 일컫자 이쪽에서 온 천하(彌天)의 석도안입니다라고 대꾸하였다. 진류의 완첨이 한 때 문득 조롱하여 이르기를 대진이 크게 일어나 천하로 집을 삼았거늘 사문沙門은 어찌 터럭과 피부를 온전히 하고 가사를 버리며 승복을 벗고 비단옷을 입지 않는가 하니 효룡이 대답하기를 참된 도(一)를 안고서 자유로이 노닐며 오직 고요하게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머리를 깎아 얼굴을 헐고 의복을 고쳐 모습을 변화시키니 저네들은 내가 욕되다 일컫지만 나는 그들의 영욕을 버렸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귀에 무심하니 더욱 존귀하게 되고 만족에 무심하니 더욱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기개는 난초의 향기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말은 풍류로운 문채를 내뱉으니, 비록 귀먹고 속된 이들과는 친근할 수 없으나 맑고도 재주로운 이들과 교제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불법을 이미 왕과 신하에게 맡기셨으니 도를 넓히고자 하면 모름지기 글월을 익힐 것이다. 지둔은 북궐에 글을 올리고 도안은 동산에 숨었으니, 스스로 뛰어난 재주를 가지지 못했다면 어찌 군주를 감동시켰겠는가. 마땅히 사리 분별에 벗어나는 말을 살펴라, 단지 헛된 말일 뿐이다.
7,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근거할 것이 없다.
《고승전》에 이르기를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말함에 근거할 바가 없다이 하였으니, 응당 고금의 흥망을 알아야 하고 모름지기 한문과 범문의 명의名義에 자세해야 한다. 삼장三藏이라는 가르침의 바다를 여행하고 육경六經이라는 어휘의 숲을 노닒으로써 말을 하면 허망한 얘기가 되지 않고 그 언어에는 전거典據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습착치는 도안법사를 찬양하여 속마음을 다스려 간결하고도 바르게 지니며 널리 섭렵한 바가 많아 안팎의 뭇 서적들을 대략 모두 훑어보았고 음양과 산술 또한 능통하였으니, 불경의 오묘한 이치는 본래 칼날 놀리듯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진종황제가 시독 이중용을 불러들여 술을 마시는데 중용이 일어나 굳이 사양하며 이르기를 관가官家에게 아뢰나니 큰그릇은 거두소서 하니 천자가 묻기를 어인 까닭으로 천자를 일컬어 ‘관가’라 하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장제의《만기론》에 쓰여진 삼황은 천하를 벼슬아치가 관청 다스리듯 하였고, 오제는 천하를 가장이 집안 다스리듯 하였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음에 삼황과 오제의 덕을 겸비하셨기에 ‘관가’라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니 천자가 기뻐하며 이르기를 참으로 이른바 임금과 신하가 천 년에 한 번 만났음이로다 하였다. 이는 학문을 몸에 갈무리하여 두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앞사람들의 말을 많이 익혀 두어서 누累가 될 바는 없다.
8, 일을 겪지 않으면 익히 아는 것이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성인이 아니라 일을 경험한 지 오래 되었을 뿐이다 하였으니, 태묘에 들어가자 모든 일을 [묘지기에게] 물은 것은 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 법도를 잊을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나한이 비록 성인이나 붉은 소금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삭이 비록 현인이나 겁회灰를 분별하지 못하였으니, 견문이 많으면 그것을 익히 알았겠지만 보고 듣지 않았기에 어두웠던 것이다.
이후주가 소 그림 한 폭을 얻었는데 낮이면 난간 밖으로 나왔다가 밤이면 이내 난간 안으로 돌아가는지라 가져다가 대궐에 바치니 태종이 후원에 펼쳐놓고 뭇 신하들에게 보였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승록 찬녕이 이르기를 남쪽 왜倭 지방에 바닷물이 간혹 줄어들면 물 속의 자갈밭이 약간 드러나게 되는데, 왜인들이 반듯한 돌이나 진주를 줍다가 큰 조개 안에 남아 있는 눈물 몇 방울을 얻어 물감에 타서 칠하면 곧 낮이면 숨었다가 밤이면 드러난다고 하며, 옥초산이 때때로 간혹 바람에 휩쓸리거나 회오리와 부딪치면 어쩌다 해안으로 잔돌이 떨어지는데 그것을 주워다 몇 방울의 물에 갈아서 색을 낸 뒤에 물건에 바르면 곧 낮에는 드러났다가 밤이면 숨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뭇 선비들이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여기기에 찬녕이 장건의《해외이기》에서 보았습니다 하였다. 후에 두호가 삼관三의 책 목록을 검열하던 중에 과연 육조六朝의 옛 서적 가운데에서 보게 되었다. 이것은 곧 널리 듣고 잘 익혀 두었다가 기회를 보아 지식을 드러낸 것이다.
9, 벗을 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벗으로써 배우고 익힘에 글로써 벗을 모으고 모인 벗으로써 어질고자 하는 마음을 돕는다. 인품을 차츰차츰 다듬어 나가며 같고 다름을 헤아리고 들추어내되 톱으로 끊는 듯이 하고 돌로 가는 듯이 하고 정으로 쫓은 듯이 하고 줄로 가는 듯이 할지니라.
유효표가 이르기를 인의仁義로서 조직하고 도덕道德으로 탁마함에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기뻐하고 그가 침체하고 쇠퇴함을 근심하며 신통의 경계는 신령스러운 누각 아래로 붙여 둔 채 그 자취를 강호 위에 남기니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소리는 그치지 않고 눈서리가 떨어져도 그 색깔은 바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곧 현명하고 활달한 이의 근본 교제로서 만고에 있어 겨우 한 차례나 마주치는 일이다.
동진 때 도안법사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을 때 사미 승광을 객점에서 만나 함께 포부를 펴니 정신과 의기가 강개하여짐에 헤어지며 서로 일컫기를 만약 함께 크게 되거든 함께 노닐던 것을 잊지 말자라고 하였다. 후에 승광이 경론을 배워 통달하고는 비룡산에 은거하자 도안이 뒤에 다시 그를 쫓아가 서로 만나 기뻐하며 예전에 서약하였던 것을 비로소 따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로 인하여 함께 글을 펴 보고 생각을 붙여가니 새로 깨달은 것이 더욱 많았다. 도안이 이르기를 옛 어른들의 격의格義에도 이치에 어긋남이 제법 많다 하자 승광이 이르기를 우선 마땅히 [그 이치를] 분석하고 [그 도리에] 소요逍遙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앞선 어른들을 옳고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므로 도안이 진리의 교법을 넓히고 찬양하고자 하면 마땅히 진실과 합당하게 해야 할 것이니, 법고가 다투어 울림에 어찌 먼저와 뒤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 때 승려 도호 역시 비룡산에 은거하여 있다가 이에 함께 얘기하며 일컫기를 고요한 곳에 거처하며 속세와 떨어져 있는 것은 언제라도 큰 법을 곧게 바로잡고자 함인데 어찌 홀로 산문을 거닐며 법의 수레로 하여금 구르는 것을 그만두게 하겠는가! 마땅히 각자 힘이 미치는 바에 따라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하니 대중이 모두 좋다!이 말하고는 마침내 각자 교화를 행하였다.
10, 마음을 관조하지 못하면 통할 것이 없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해탈은 마땅히 중생들의 마음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라 하시거늘 어인 까닭인가 진나라 판본인《화엄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마치 뛰어난 화가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오음五陰을 짓는 것이니 일체의 세간世間 가운데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마음처럼 부처님 역시 그러할 뿐이며, 마치 부처님처럼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하였으니 [마음은] 중생과 부처의 어머니가 되며 또한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능엄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이 생겨난 바는 오직 마음이 드러난 바이니 일체의 인과와 세상의 작은 티끌은 마음으로 인하여 그 실체(體)가 이루어진다 하였다. 마음은 있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구하여도 가히 볼 수가 없고, 마음은 없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그것을 퉁기면 또한 울림이 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니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반주삼매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은 마음을 좇아 해탈을 얻으니, 마음이란 청정하여 무구無垢라 이름하며 오도五道에 [헤매더라도] 선명하고 깨끗하여 색色을 받지 않으므로 이것을 해득하는 자는 큰 도를 이룰 것이다 하였다.
이 열 가지 문을 준수하여 윗사람은 행하고 아랫사람은 본받아서 게으르지 않고 그것을 마치면 곧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후세에까지 이어질 것이나, 진실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조사들의 도는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다. 뒤를 잇는 이들에게 바라나니 살펴보고 경계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