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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본 스승 사생의 자상한 아버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존(主尊)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삼계의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시며(三界道師), 뭇 생명을 자비와 지혜로 인도하시는 스승이며 인도자이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고통의 세계(苦海)이며 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忍土) 사바세계에 원력으로 오셔서 이곳이 바로 불국정토임을 알리고자 한평생을 설법하고 교화하며 중생과 더불어 살다 간 부처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 중생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스승으로 수많은 부처님 중에서도 근본 스승이 되는 부처님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불은 대부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백련사 대웅전 부처님도 마찬가지이다. 마왕 파순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 아리따운 천상의 여인을 보내 유혹한다. 그러나 이미 깊은 선정 속에 들어간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을 동요하게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왕 파순이 직접 성불을 늦출 것을 사정한다. 그러면서 석가모니에게 당신의 성불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지신들이 나타나 부처님의 성불을 증명하자, 마왕 파순이 항복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바로 이 장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까닭은 우리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부처이므로 내가 안고 있는 장애, 우리 속에 있는 마(魔)에 끄달리지 말라는 무언의 설법이자 스스로 깨어있다면 장애는 저절로 사라진다는 가르침을 주고자 함이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에는 일반적으로 지혜(智慧)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행원(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협시(脇侍)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배치 방식이다.

그런데 백련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는 신앙이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기 때문이다. 대자대비로 고통 속에 빠진 중생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고 언제든지 달려오셔서 구원해주시겠다는(門聲救苦)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과 만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 원력의 화신인 지장보살님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깊고 넓은 대자대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은 현실 세계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음성을 듣고 간절한 염원에 의해 나타나는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이다.


관세음보살을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고난에 처해 있는 그 어떤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고난을 피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으며, 중생의 소원에 따라 나타나는 자비로운 분이다. 누구든지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명호를 부르면 고통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대자비는 그 어떤 불보살의 자비보다도 깊고 넓으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가지가지 모습을 나타내어(32응신)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하신다.

“갖가지 고뇌를 받는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관하여 모두를 해탈케 한다.”《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중생 해탈 서원한 대원본존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장보살은 대원본존으로 미래의 세계가 다할 때까지 죄와 고통에 빠진 중생이 있으면 해탈케 하며, 육도중생 모두를 해탈케 한 다음 성불할 것이라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한 생각 동안이나마 불법을 올바로 생각하고, 이름을 부르며 참회하는 자는 의식이 풍부해지고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는 등 28가지의 이익이 생겨난다고 《지장보살본원경》에 밝히고 있다.

오늘날 지장보살은 망자(亡者)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구원하는 보살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비록 죄업을 아무리 많이 저지른 극악한 사람일지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원력에 의지하고 참회한다면 생전의 모든 업장이 소멸되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백련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통해 대자비와 대원력으로 모든 중생이 참된 자성, 자기 부처를 보라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맑은 도량 백련사 대웅전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죄와 업장 녹여주는
참제업장십이존불(懺除業障十二尊佛)

백련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법당 중앙 천정에 중생들의 죄업을 참회 받으시고 증명하시는 열두 분의 부처님인 참제업장십이존불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참제업장십이존불(懺除業障十二尊佛)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천수경》에 등장한다. 열두 부처님은 업(業)에 따른 모든 장애를 없애주는 부처님으로, 누구나 이 부처님을 믿고 따르면 일체의 장애와 악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열두 부처님을 신행하며 명호를 외우므로 얻게 되는 공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도표 참조).

이 열두 분의 부처님은 특별히 중생의 참회를 증명하고 받아들여 모든 업장을 녹여주겠다고 서원을 세웠던 분이다. 그러므로 이들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며 귀의하여 우리의 지극한 참회를 증명해 줄 것을 청하고, 이들 부처님께서 지니신 위신력으로 우리의 업장을 녹여줄 것을 청하는 것이다.

보승장불寶勝臟佛
일생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신세진 일과 모든 허물과 빚이 소멸되며, 온갖 짐승을 학대하고 일생에 축생을 타고 다닌 죄를 없앨 수 있음.

보광왕화염조불寶光王火炎照佛
일생에 돈과 재물로 사치하고 낭비한 죄업이 소멸되며, 공공 시설물 등 상주물(常住物)을 손상시킨 죄를 덜 수 있음.

일체향화자재력왕불一切香火自在力王佛
일생동안 음행 등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파계한 죄와 크고 작은 악업을 멸할 수 있음.

백억항사사결정불백億恒河沙決定佛
일생에 지은 살생 등의 죄를 없앨 수 있음.

진위덕불振威德佛
일생에 지은 악구(惡口), 사음(邪淫)의 죄를 없앨 수 있음.

금강견강소복괴산불金剛堅强消伏壞散佛
아비지옥에 떨어질 죄업을 덜 수 있음.

보광월전묘음존왕불普光月殿妙音尊王佛
대장경의 독송이나 법문을 듣거나 혹은 교설을 널리 전하면 죄를 없앨 수 있음.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
성내고 화를 내어 지은 죄를 없앨 수 있음.

무진향승왕불無盡香勝王佛
태어나고 죽는 고통을 초월할 수 있음.
(숙명지를 얻을 수 있음).

사자월불獅子月佛
축생으로 태어나는 죄업을 없앨 수 있음.

환희장엄주왕불歡喜莊嚴珠王佛
살생, 도둑질 등 열 가지 중요하고 큰 계(十重大戒)를 어긴 죄를 없앨 수 있음.

제보당마니승광불帝寶幢摩尼勝光佛
남을 괴롭히고, 욕심내어 지은 죄를 없앨 수 있음.


제자들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생각 중에 어리석고 미혹한 데 빠지지 않으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했던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다 소멸되고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제자들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생각 중에 교만하고 진실하지 못한 데 물들지 않으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교만하고 속이고 하던 모든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제자들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생각 중에 질투심에 물들지 않으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질투 등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육조단경》

이 세상에서 참회만큼 사람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없다. 대개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죄인 줄을 모르거나 죄인 줄 알면서도 드러내 밝히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참회라고 하는 것은 허물이 있는 사람이 허물인 줄을 알아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고쳐서 용서를 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회의 핵심은 죄를 아는 것이요, 알았으면 드러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참(懺)이란 스스로 범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것이며, 회(悔)는 불보살님이나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사과하는 일을 말한다. 이처럼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거나 다른 이들에게 고백함으로써 죄가 없어지거나 죄를 면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욕심이나 애착으로 참회를 해서는 안 된다. 원래 죄가 없는 존재인 나와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무조건 참회하여야 한다. 맑은 도량 백련사 대웅전 열두 분의 부처님 전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며 과거나 현재에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들을 지성껏 참회해 보자.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간을 통해 모든 장애와 탐심 · 진심 · 치심에 이끌려 살아왔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내면의 참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정법을 수호하고 해태심을 경계하는
신중탱화(神衆幀畵)

신중탱화는 불법을 수호하는 온갖 호법신들(神衆)을 그린 불화를 말한다.


신중탱화를 봉안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제석천, 범천, 사천왕, 금강역사 등만 그렸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재래 토속신앙의 신들도 함께 그려 넣어 불교의 관용적이고 역동적인 신앙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에 불교가 차츰 민간신앙과 습합되어 보다 많은 신들을 수용하게 되어 104위에 이르게 되었다. 백련사 대웅전 신중탱화는 104위 신중탱으로 대예적금강신을 주축으로 하여 바로 아래 깃털로 장식된 관을 쓴 동진보안보살과 그 좌우에 제석천과 대범천, 그 위쪽으로 사천왕과 팔부신장 및 십이지신상 등의 신중들을 묘사하고 있다. 동진보안보살은 위태천이라고도 하며 사천왕의 32대장을 대표하는 수령이다. 어려서 동진 출가하여 청정한 범행으로 오로지 불법 수호를 위해 정진한 끝에 부처님께서 호법선신으로 위촉하였다. 그래서 동진보안보살이라 하며, 세계를 보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며 마구니를 없애고 불법을 지키는 선신(善神)이다.

제석천은 인도의 무용신인 인드라에서 유래한다. 불교에서는 선신 가운데 호법신으로 받아들였다. 제석천은 33천이라고도 하는 도리천의 주재자로서 수미산 정상에 있는 선견성에 머무르면서 세상을 수호한다. 범천은 본래 인도에서 우주를 창조하는 최고의 신인 브라만을 말한다. 이 브라만은 범천으로 불교의 호법신이 되었다. 불교에서 색계 초선천의 4천을 모두 범천이라고 한다. 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부처님의 설법 때마다 빠짐없이 듣는다고 한다. 104위 신중에는 인도, 중국, 한국의 토속신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화면 위쪽인 상단에는 인도, 중단에는 중국의 북두칠성 등이, 하단에는 한국의 토속신이 묘사되어있다. 104위 신중탱화는 해인사나 범어사, 법주사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대웅전에 104위 신중을 모신 까닭은 이 수호신이 지키는 백련사는 모든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한 장소, 청정도량이라는 신성한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방일한 마음을 엄숙하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

우주법계와 내 안에 가득하신 부처님

이 주련은 《화엄경》 제2 여래현상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부처님은 우주법계에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부처님은 내 안에 가득할 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회사에도, 들판에도 우리와 늘 함께 살아간다. 언제든지 우리들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 아내로, 남편으로, 직장 동료로,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자비의 손길을 보내주신다. 즉 인연을 따라 나아가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깨달음의 자리, 진여의 자리인 보리의 자리에 앉아계신다. 이 주련을 통해 부처님은 백련사 대웅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과 내 안의 부처님을 바로 보고, 나아가 이 도량을 벗어나서 내가 가고 머무는 곳 어디서나 함께 하고 계시는 부처님을 바로보아야 함을 우리들에게 무언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의 청정법신 우주법계 충만하여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널리 일체 중생 앞에 차별 없이 나투시네.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인연 따라 감응하여 언제든지 오시지만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보리좌를 떠나신 일 한 순간도 없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