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론 해제
대승보적경론(大乘寶積經論) 또는 보적경론(寶積經論)이라고도 한다. 저자의 한역(漢譯)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장역(西藏譯)에 의하면 안혜(安慧, Blobrtan, Sthiramati)라고 한다. 후위(後魏) 보리류지(菩提流支)1)가 한역한 것이다. 본 논은 대보적경론이라고 부르는데, 보리류지가 번역 및 편집한 120권 『대보적경』전체에 관한 논술은 아니고, 그 중에서 제112권에 들어 있는 제43 『보명보살회(普明菩薩會)』에 대한 주석이다. 이에 해당하는 서장역본의 제목은 성스러운 대보적법문(大寶積法門) 10만 품 가운데 「가섭품(迦葉品)」에 대한 소(疏)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唐)의 보리류지(菩提流志, 572〜727)가 한역한 것과 같은 방대한 『대보적경』의 범본(梵本) 존재에 대하여는 수(隋)의 사나굴다(闍那崛多)가 전하는 말과, 현장(玄奘)이 입적하기 한 달 전에 한 말, 그리고 보리류지의 역경(譯經) 사실 등에 의하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보이는데, 과연 그것이 언제부터 『대보적경』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와 같은 잡다한 경을 포함하게 되었는지는 하나의 문제이며, 중국의 역경사에서는 옛날부터 다만 제43 「보명보살회」만을 『보적경』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보명보살회」는 보리류지(菩提流志)가 편집을 마치기 전에 『대보적경』이라고 하였고, 지참(支讖)2)의 이역(異譯)은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이라고 하였으며, 역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진(晋)대의 번역은 『마하연보엄경(摩訶衍寶嚴經:大迦葉品)』이라 하였고, 사나야사(闍那耶舍)는 『보적경(失本)』이라 하였으며, 시호(施護)는 『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大迦葉問大寶積正法經)』이라고 한역하였다. 범본과 서장본도 현존하며, 그것을 대조하여 출판한 홀스타인(A. Stael Holstein)경은 서장본에 따라 Ka-s´yapa parivarta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범본의 사본에는 제목 부분이 산실되고 없다. 그러나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과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등의 범본에 Ratnaku-ta(보적경)으로 인용되어 있는 것은 모두 대부(大部) 『대보적경』이 아니라, 이 제43회만을 다룬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43회만이 예부터 『보적경』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지금의 『대보적경론』도 다만 제43회에 대한 주석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논을 살펴보면, 첫머리에 귀경게(歸敬偈) 2송이 있고, 다음에 보적(寶積)이라는 이름의 뜻을 풀이해서, 모든 대승의 가르침 중에서 여래는 여러 보살들을 위해서 사행상(邪行相)과 정행상(正行相) 등 열여섯 가지 상(相)의 차별에 대해서 설법하고 있으며, 이 경은 이러한 것들을 남김없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보적이라 한다는 것을 설하고, 계속해서 이하의 경문을 문답체로 하여 경 전체의 뜻을 상세하게 설하고 있다. 본 논이 다루고 있는 경문은 본 경의 한역 4본 중에서 보리류지(菩提流支)가 편찬한 진(秦)대의 실역본(失譯本)과 가장 유사하다. 서장본(西藏本)은 단수이경소부(丹殊爾經疏部)(Ji, 함(函), fols. 244a〜350a. 北京版)에 들어 있다.
자세한 것은 『삼보기(三寶紀)』제9권, 『내전록(內典錄)』제4권, 『역경도기(譯經圖紀)』제4권, 『개원록(開元錄)』제6권, 『정원록(貞元錄)』제9권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주)------------------------------------------------------
1) 이는 508년경에 중국에 들어온 위(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로서 뒤에서 언급하는 당(唐)의 보리류지(菩提流志, 572〜727)와는 다른 사람이다.
2) 월지국 사람으로서 후한(後漢) 시대에 중국에 온 지루가참(支婁迦讖)의 다른 이름이다.
대보적경론 제1권
대보적경론1) 제1권
후위(後魏) 보리류지(菩提流支) 한역
이병욱 번역
하혜정 개역
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 저 언덕으로 가신 분이시며
큰 자비로 마군과 원수를 꺾으신 분께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제가 『보적경』을 풀이해 보니
열여섯 가지 차별상으로 진실하고 미묘한 의미를 장엄하였으니
법을 오래도록 머물게 하여
자신에게 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이었습니다.
[문] 당신께서 『보적경』을 풀이하려 하니 먼저 이 법의 의미를 풀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으로 보적(寶積)이라 이름하였습니까?
[답] 대승법의 보배 가운데 모든 법의 차별된 뜻을 거두었기 때문이며, 온갖 대승법의 보배 가운데 모든 법의 차별된 모습을 이 경전에서 다 거두어 의미를 취하였으므로 보적이라고 이름하였다.
첫째는 취(聚)이며 둘째는 적(積)이고 셋째는 음(陰)이며 넷째는 화합[合]이니, 뜻은 한 가지인데 이름이 다른 것이다. 이 가운데 일체의 대승법 중에서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위해 열여섯 가지 차별된 모습을 구분하여 말씀해 주신다.
무엇을 열여섯 가지 차별상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법을 삿되게 행하는 모습[邪行相]이니, 이와 같이 보살이 삿된 행을 행하는 것을 삿된 행을 행하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둘째는 바르게 행하는 모습[正行相]이니 이와 같이 보살이 바른 행을 행하는 것을 바른 행을 행하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셋째는 바른 행을 행하는 이익 된 모습[行正行利益相]이니 보살이 바른 행에 머물러 마친 것을 법행(法行)으로 착한 행[善行]을 평등하게 행한다[等行]고 한다.
넷째는 법행을 행하는 모든 모습의 차별이다.
다섯째는 모든 보살이 자애로운 마음을 내는 모습에 대한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 보살이 행하고 말하는 모습[行說相]이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보살이 바른 행에 머물러서 계를 배우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성문계와 보살계 가운데 뛰어나거나 열등하며 훌륭하거나 동등함을 말하는 모습이다.
여덟째는 보살이 보살계를 잘 배운 뒤에 세간의 지혜 등으로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하는 차별의 모습을 행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저 보살장(菩薩藏)을 받을 때는 성문계를 닦는 모습의 차별이다.
열째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문(沙門)의 모습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열한째는 배우지 않는 사문의 모습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열두째는 가명(假名)에 머무는 행의 모습이 차별되기 때문이다.
열셋째는 진실에 머무는 행의 모습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열넷째는 여래께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시는 모습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열다섯째는 은미(隱微)하고 비밀스러운 말씀의 모습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열여섯째는 보살장 중 가르침을 얻은 다음에 잘 믿는 이익의 모습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대승경전 가운데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위하여 이와 같은 열여섯 가지 모습의 차별법을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저 법문 중에 이 모든 모습이 말씀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며, 저 대승법의 보배 가운데 온갖 모습을 모두 다 거두기 때문에 이 묘한 법문을 보적이라 이름한다.
[문] 어째서 저 대승의 바른 법의 보배 가운데 모든 모습을 이 가르침에서 거두려 합니까?
[답] “가섭아, 네 가지 법[四法]이 있어 지혜에서 물러나 잃게 한다”는 등과 같은 흑붕(黑朋)에 포함된 여덟 종류의 4구(句)가 있으니, 삿된 행을 포섭하는 모습의 차별[攝邪行相差別]이기 때문이다.
“가섭아, 보살에는 네 가지 큰 조복장[伏藏]이 있다”는 이와 같은 등등의 말은 여섯 종류의 4구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것은 바르게 행하는 이익 된 모습의 차별[正行利益相差別]이다.
이와 같이 여기에서는 스물두 가지의 4구를 가지고 청정한 일과 번뇌에 물드는 일과 지혜에서 물러나는 일과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일을 모두 말하였다.
“가섭아, 보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그저 이름만을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서른두 가지 모습[三十二相]의 차별이 있기 때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섭아,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다. 나는 비유로써 이와 같은 열아홉 가지 비유를 말할 것이니 (열아홉 가지 비유로) 밝힌 모든 모습의 차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섭아, 보살이 이 『대보적경』을 배우고자 하여 그 등불을 밝히기에 이른다면 바로 성스러운 지혜의 근기[聖慧根]인 것이다” 하는 것이 이것이고, “그 어둠은 바로 모든 번뇌와 업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것은 바른 행에 머물러 그 중에서 모든 계를 거두는 모습의 차별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섭아, 비유하면 종자를 허공 속에 두어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주장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수백, 수천 명의 성문과 벽지불의 과보를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은 성문의 계율을 비유로 밝힌 것으로 보살계 중에 뛰어나고 열등한 모습의 차별을 거두기 때문이니,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때 세존께서 다시 가섭에게 “내지 근본에서부터 끝까지 청정한 까닭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말씀들은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거두어서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일의 차별된 모습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섭아, 너희들은 안을 관조할 것이며 밖으로 달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는데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증상만(增上慢)을 품고서 스스로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은 저 보살장을 거두어 취할 때 성문의 계를 가르치고 닦는 모습의 차별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가섭아, 사문(沙門), 사문 하는데, 무슨 뜻으로 사문이라 하는가? 또 어떤 것이 사문인가? 가섭아, 네 가지 종류의 사문이 있으니, 이와 같이 두루 밝은[普明] 이것을 보살이 빨리 법에 통한다고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설명은 앞의 세 가지 사문과 잘 배우지 않는 사문의 모습의 차별을 포섭한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때 존자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희유하고 희유하옵니다. 이 『대보적경』은 대승을 수행하는 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으니, 이 『대보적경』을 독송하고 지니고 베껴 쓰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말 등은 보살에게 가르치고 (보살이) 잘 믿어서 이익 되는 모습의 차별을 포섭한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대승에서 말하는 것은 열여섯 가지 모든 법의 모습이 차별되게 거두어지기 때문에 이 법문을 보적이라 이름한다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주) -----------------------------------------------------
1) 이 논은 제목은 비록 『대보적경론(大寶積經論)』이지만, 당대(唐代) 보리류지(菩提流志)가 편찬 번역한 『대보적경(大寶積經)』전체 경전 120권을 모두 석론(釋論)한 것이 아니고, 제43회 「보명보살회(普明菩薩會)」 부분만을 주석하였다.
...
첨부 파일에 계속됩니다.
출처: 동국대 불교학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