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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 한자 공부 - 3 序 - 卞榮世(치문 서문)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2-07-05 (목) 10:37 조회 : 2617
3 序 - 卞榮世 음훈(치문 서문).hwp (165.9K), Down : 65, 2012-07-05 10:37:10
3 序 - 卞榮世 한자연습장(가로)(치문 서문).hwp (101.6K), Down : 44, 2012-07-05 10:37:10

치문 한자 공부 - 3 序 - 卞榮世(치문 서문)

아래 序에 나오는 모든 한자 음훈 및 연습장 파일 첨부 하였습니다.

序

蓋衆生之根欲性이 殊라 若一以論之컨댄 恐非得旨也로다

故로 丈夫自有衝天志라 不向如來行處行도 是也요

非佛之言이면 不言하고 非佛之行이면 不行도 亦是也라

等空法界에 焉有是不是리요만은 而言是不是는 乃是妄想的分別이라

旣有此分別이면 自有是非的說話로다 觀那古之明心見性的祖師하라

擧皆博學大家라 曹溪之不識文字云者도 不似今時禪客之根銀不識者로다

又觀那執麈搖松之高座하라 盡是宗說兼通이라

泰沼之不聽半徧云者도 何如今之講家에 水乳不辨者乎아

此書自支那而朝鮮而行于緇門之中者久矣라

於古則三券임도 猶謂之略이어늘 今則爲繁하야 而略之爲一券이나

學之者又謂之爲繁하야 而又略之必矣리라

若如是則將見此書未生前之時節도 亦不遠이로다

雖得不立文字之旨나 有乖受持讀誦之訓이라

致使卽心卽佛之妙密旨趣로 反爲撥無因果者之口實이로다

古德이 頌云 深嗟가 末法實悲傷하여 佛法無人得主張이로다

未解讀文先坐講하고 不曾行脚便陞堂이로다 將錢討院如狂狗하고 空復高心似啞羊이니 彼果是能知未來劫事之聖者歟아

何其寫得末法今日之事情을 如此其深且切哉아

震湖講伯 以善巧方便으로 觀根逗機하여 略之爲一券而懸吐之하고

至於註中에 亦懸吐하되 於孟浪處則筆削之하야 庶使不惱其惱하고

而輒易解之하니 可謂老婆心切矣로다 請余校之어늘 遂不揆不才하고 敢妄閱之라가 不覺於藏識中에 引起衆生根欲性殊之感이라

書之於此하야 庶幾不至略之又略하야 至于無略하고

而爲流通之一助云哉인저

丙子春 法輪寺 雪醐山人 草牛堂 卞榮世 謹識

대개 중생들은 그 근기와 욕망의 품성이 서로 다르다. 만약 한마디로 이를 논한다면 아마도 그 요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듯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니, 부처님께서 행하신 곳을 향하여 행하지 아니함도 이것이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부처님의 행위가 아니면 행하지 않음도 역시 이것이다. 허공과 같은 법계에 어찌 옳고 옳지 않음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옳고 옳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이는 곧 망상에 의한 분별이라. 이미 이러한 분별이 있게 되면 저절로 시시비비의 말들이 있게 됨이로다.

저 옛날 마음을 밝혀 견성한 조사들을 보라. 거의 모두 다 배움이 넓은 대가들이다. 조계선사(육조 혜능 스님)가 글을 알지 못하였다 말하는 것도 오늘날의 선객들이 근과 은을 알지 못하는 것과는 같지 않음이로다. 또한 불주를 잡는다거나 소나무 주장자를 흔드는 높은 법좌를 보라. 모두 근본 이치와 명쾌한 설명을 겸하여 통하였음이라. 신태스님과 혜소스님의 ‘듣지도 않았다거나’ ‘반편만 들었다’ 이르는 것도 어찌 오늘날의 강사들이 물과 우유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겠는가?

이 책이 지나로부터 조선에 이르러 들어와 치문 가운데에 사용된 지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세 권이었는데도 오히려 간략하다 말하였는데, 지금은 번거롭다 하여 간략하게 하여 한 권이 되었으나 이를 배우는 사람들이 또 그것을 일러 번거롭다 하여 간략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반드시 줄일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곧 이 책이 생겨나기 전의 시절(이 책이 없었을 때)을 보는 것도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불립문자의 요지를 얻었다 하더라도 수지독송의 가르침에는 어긋남이 있을 것이다. 드디어 곧 마음이 곧 부처라는 묘밀한 뜻으로 하여금 도리어 인과법을 없애버리는 자의 구실이 될 뿐이다. 고덕이 송하여 이르시기를 「매우 슬프구나, 말법시대에 실로 마음이 슬프고도 아프나니, 부처님 법을 주장할(제대로 설명하거나 펼 사람) 사람이 없음 이로다. 경문을 해독하지도 못하면서 먼저(성급하게) 강단의 자리에 앉고, 일찍이 행각도 경험하지 못한 채(선사라고 하면서) 법을 설하는 자리(법상)부터 올라가는구나. 돈을 가지고 사원을 짓는 것은 마치 미친개와 같고, 빈 배에 마음만 높음은 흡사 벙어리 양과 같다」 하였으니, 그는 과연 미래겁의 일을 능히 아는 성자였던가? 어찌하여 그렇게 말법시대인 금일의 사정을 이와 같이 깊고 또한 간절하게 쓸 수 있었는가!

안진호 강백이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근기를 보고 근기에 맞추어서 한 권의 책으로 간략히 하고 토를 달았으며, 심지어 주석에도 또한 토를 달되 맹랑한 곳은 삭제함으로써 거의(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여금 고민스러운 곳은 고민스럽지 않게 하여 문득 쉽게 그것을 알게 하였으니 그 노파심이 가히 절실하다 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의 교감을 요청함에 마침내 재주 없음을 살피지 않고 감히 망령되게 그것을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 않게, 문득, 갑자기) 장식 가운데에서 중생의 근기와 욕망과 품성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이 일어나게 되어서 그것(중생의 근욕성이 다르다는 느낌이 일어난 것)을 여기에 쓰게 되었는데 바라는 바는 간략함에 이르지 못한 곳은 다시 더 간략하게 하고 (더 이상은) 간략하게 할 수 없음에 이르게 하여 (치문경훈이) 유통하는 데에 조그만 도움이 되기 위함임을 이르고자 함인 것이다.

병자(1936)년 봄에, 법륜사에서 설호산인 초우당 변영세가 삼가 쓰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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