叙註緇門警訓
釋敎東漸에 每多註疏하니 如 金剛楞嚴은 動輒百十이요
其餘紀述도 亦或二三이로되 警訓獨無解는 何哉오
豈海外褊邦이 未及聞見耶아 抑亦無事解釋也耶아
叢林中에 傳習이 旣久호되 大略은 皆日用切近之誨라
不過遏浮情誡邪業하야 以軌乎正道니 是는 學佛之發軔이며 迪蒙之慈訓也로다
凡爲釋子者는 不可不誦習依行이니 正如爲山九仞에 必俶乎一簣요
行詣千里에 實昉乎初步니 捨一簣初步하고 望九仞論千里면
雖三尺이라도 亦知其無能爲也리라
此書雖曰入道初門이나 矯矯群賢이 各出手眼하야 多有引用하니
若不博涉이면 固難遊刃이라 或根銀을 莫辨하며 名義를 俱錯일세
余每臨講授하야 終不醳然일새 僭越秉筆하야 略爲箋釋하고
行住必俱하야 稽檢備忘하노니 祇堪自悅이요 不可持贈他人也로다
客이 曰 近有一種禪流가 另騖高見하야 但言心卽是經이어니
何更喃喃이며 或復抹却疑團하고 淨土諸門을 一皆掃除하며
樂于放逸하고 耽于閒寂하야 自便己私어늘.
子何沾沾以一竇自多하야 從事於斯오? 無乃見大笑耶아?
答이라 余-卑卑雌伏하야 言不出群하니 乏應世之全才하고 蔑摧邪之慧力이라
怎奈一齊而衆楚之에 何리오? 是는 日夕扼腕而疾首者也로다
且在余之志는 爲道요 不爲名이며 爲法이요 不爲身이라 譬如以鳥鳴春하며
以雷鳴夏하며 以蟲鳴秋하며 以風冽冽로 鳴乎其冬이니 蓋出於自然而不能已也라
詎敢灑同雲之潤하야 以公見聞也리오? 聊私以示余之役而已로라.
至於曲註蔓解하야 以抹幽奧之旨者는 亦解則無解니
豈能體古人의 無事解釋之意리오!
庶可以助一簣初步.」云爾니라.
時는 <康熙> 乙亥仲秋日에 <栢庵>沙門性聰은 識하노라.
부처님의 가르침(불교)이 차츰 동쪽으로 전해옴에 매번(그때마다) 주와 소가 많아졌으니, 금강경이나 능엄경 같은 것들은 시작하면 문득 수십 수백 가지가 되며 그 나머지 경전의 기록이나 서술도 또한 두세 가지는 되는데 경훈만이 유독 주해서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찌 바다 바깥에 치우친 나라(조선)만 미처 듣고 보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해석에 전념하지(일삼지) 않았던 것인가? 총림 중에 전해지며 익혀 온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그 대략은 모두 날마다 쓰이는 절친한 가르침으로서 경박한 정을 막고 사악한 업을 경계하여 그로써 바른 도를 따르게 하는데 불과한 것이지만 이것은 깨달음(佛)을 배우는 첫 출발이며 몽매함을 이끌어주는 자비로운 가르침인 것이다. 무릇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암송하여 익히고 이에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을 수 없음이니, 가령 구인(아홉 길)의 산을 만듦에 반드시 한 삼태기(의 흙)로부터 비롯되고 천리 길을 가는데도 실로 첫 걸음에서 비롯되는 것과 같음이니 한 삼태기와 첫 걸음을 버리고 아홉 길의 산을 바라며 천리의 길을 거론한다면 비록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또한 그 일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이 글이 비록 도에 들어가는 첫 문이라고 이르지만 뛰어난 여러 현인들이 각기 뛰어난 솜씨와 안목을 내서 지은 글로서 많은 인용문들이 실려 있으니, 만약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지 못했다면 진실로 명쾌하고 적절하게 해석하기가(遊刃) 어려울 것이다. 간혹 근자와 은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름과 뜻(형식과 내용, 名義)을 모두 그르치는 지라. 내가 매번 강론해 주는 자리에 임하였지만 마침내 그 뜻이 시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분수에 넘치게(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붓을 들어 대략 주를 달고 해석하였는데 (이 글은) 공부하는데 (행주좌와에) 반드시 구하여(갖추었다가) 헤아리고 조사하여 잊을 것에 대비한 것이니, 다만 스스로 즐길 뿐이지(스스로 공부하기에 감당할 만한 글이지)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말하기를 「근래에 한 무리의 선류가 있는데, 고상한 견해에만 유달리 힘쓰며 마음이 곧 경전인데 어찌 다시 재잘거릴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하며, 혹은 또 의심 덩어리를 지워버리고 정토의 모든 법문을 하나같이 모두 쓸어버리며 방일을 즐기고 한적함을 탐닉하며 스스로 자기의 사사로움만을 편하게 하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경망스럽게도 좁은 소견으로 스스로 뛰어나다 여기며 이 일에 종사하십니까? 아마도 큰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기에 대답하기를 「나는 미천하여 남에게 굴복하고 말은 군중 속에서 뛰어나지 못하며 세상에 대응할 온전한 재주는 모자라고 사악한 견해를 꺾을 만한 지혜의 힘은 없습니다만, 제나라 사람 한 명이 초나라 아이에게 제나라 말을 가르치려 하나 많은 초나라 사람들이 초나라 말로 떠든다면 더욱이 이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밤낮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머리를 앓아 온 까닭입니다. 또한 내가 지닌 뜻은 도를 위함이지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며, 법을 위함이지 몸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비유컨대 새는 봄에 울고 우뢰는 여름에 울며 벌레는 가을에 울고 바람은 차디차게 겨울에 우는 것과 같으니 대개 스스로 우러나온 것이므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거늘, 어찌 감히 구름과 같은 물기를 뿌림으로써 보고들은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겠습니까? 아쉬운 대로 사사로이 내가 애쓴 것을 보이고자 할뿐입니다. 나아가 잘못 주석하고 쓸데없이 풀이함으로써 오묘한 뜻을 지워버림에 이르러서는 역시 풀이를 했다 하더라도 풀이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니, 어찌 해석을 일삼지 않은 고인의 뜻을 능히 체득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삼태기와 첫 걸음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였다.
때는 강희 연간의 을해년 중추에 백암사문 성총이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