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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 한자 공부 - 6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치문 경훈)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12-08-22 (수) 22:54 조회 : 2935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치문 경훈) 아래 본문의 한자 음훈 및 연습장 파일 첨부 되어 있습니다.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夫兩桂垂蔭에 一華 現瑞하니 自爾로 叢林之設을 要之컨대 本爲衆僧이니 是以로 開示衆僧故로 有長老하고 表儀衆僧故로 有首座하고 荷負衆僧故로 有監院하고 調和衆僧故로 有維那하고 供養衆僧故로 有典座하고 爲衆僧作務故로 有直歲하고 爲衆僧出納故로 有庫頭하고 爲衆僧主典翰墨故로 有書狀하고 爲衆僧守護正敎故로 有藏主하고 爲衆僧迎待檀越故로 有知客하고 爲衆僧請召故로 有侍者하고 爲衆僧看守衣鉢故로 有寮主하고 爲衆僧供侍湯藥故로 有堂主하고 爲衆僧洗濯故로 有浴主水頭하고 爲衆僧禦寒故로 有炭頭爐頭하고 爲衆僧乞丐故로 有街坊化主하고 爲衆僧執勞故로 有園頭磨頭莊主하고 爲衆僧滌除故로 有淨頭하고 爲衆僧給侍故로 有淨人하나니 所以로 行道之緣이 十分備足하고 資身之具가 百色現成하야 萬事無憂라사 一心爲道하나니 世間尊貴요 物外優閑이라 淸淨無爲는 衆僧이 爲最나 廻念多人之力컨댄 寧不知恩報恩이리요 晨叅暮請하야 不捨寸陰이라야 所以報長老也요 尊卑有序하고 擧止安詳이라야 所以報首座也요 外遵法令하고 內守規繩이라야 所以報監院也요 六和 共聚호대 水乳相叅이라야 所以報維那也요 爲成道故로 方受此食이라야 所以報典座也요 安處僧房하야 護惜什物이라야 所以報直歲也요 常住之物을 一毫無犯이라야 所以報庫頭也요 手不把筆하고 如救頭燃이라야 所以報書狀也요 明窓淨案에 古敎照心이라야 所以報藏主也요 韜光晦跡하고 不事追陪하야 所以報知客也요 居必有常하고 請必先到하야 所以報侍者也요 一甁一鉢로 處衆如山이라야 所以報寮主也요 寧心病苦하고 粥藥隨宜라야 所以報堂主也요 輕徐靜黙하고 不昧水因이라야 所以報浴主水頭也요 緘言拱手하고 退己讓人이라야 所以報炭頭爐頭也요 忖己德行이 全缺應供이라야 所以報街坊化主也요 計功多少하고 量彼來處라야 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요 酌水運籌하고 知慚識愧라야 所以報淨頭也요 寬而易從하고 簡而易事라야 所以報淨人也니 所以로 叢林之下에 道業이 惟新하야 上上之機는 一生取辦하고 中流之士는 長養聖胎하며 至如未悟心源이라도 時中에 亦不虛棄니 是眞僧寶며 爲世福田이라 近爲末法之津梁하고 畢證二嚴之極果하리라 若或叢林이 不治하고 法輪이 不轉이면 非長老이 所以爲衆也요 三業이 不調하고 四儀이 不肅이면 非首座所以率衆也오 容衆之量이 不寬하고 愛衆之心이 不厚하면 非監院所以護衆也오 修行者를 不安하고 敗群者를 不去하면 非維那所以悅衆也오 六味가 不精하고 三德이 不給이면 非典座所以奉衆也오 寮舍을 不修하고 什物을 不備하면 非直歲所以安衆也오 畜積常住하고 减剋衆僧이면 非 庫頭所以贍衆也오 書狀을 不工하고 文字滅裂이면 非 書狀所以飾衆也오 几案을 不嚴하고 喧煩을 不息이면 非이 藏主所以待衆也오 憎貧愛富하고 重俗輕僧이면 非이 知客所以贊衆也오 禮貌不恭하고 尊卑失序하면 非侍者所以命衆也오 打疊不勤하고 守護不謹하면 非이 寮主所以居衆也오 不閒供侍하고 惱亂病人이면 非堂主所以恤衆也오 湯水不足하고 寒煖失儀하면 非이 浴主水頭所以恤衆也오 預備不前하고 衆人動念하면 非이 爐頭炭頭所以向衆也오 臨財不公하고 宣力不盡이면 非이 街坊化主所以供衆也오 地有遺利하고 人無全功이면 非園頭磨頭莊主所以代衆也오 懶惰로 倂除하야 諸緣不具면 非이 淨頭所以事衆也오 禁之不止하고 命之不行이면 非이 淨人所以順衆也니라 如其衆僧이 輕師慢法하고 取性隨緣이면 非 所以報長老也오 坐臥叅差하고 去就乖角이면 非所以報首座也오 意輕王法하고 不顧叢林이면 非所以報監院也오 上下不和하고 鬪諍堅固면 非所以報維那也오 貪婪美膳하고 毁訾麤飡이면 非所以報典座也오 居處受用을 不思後人이면 非所以報直歲也오 多貪利養하고 不恤常住면 非所以報庫頭也오 事持筆硯하야 馳騁文章이면 非所以報書狀也오 慢易金文하고 看尋外典이면 非所以報藏主也오 追陪俗士하고 交結貴人이면 非所以報知客也오 遺忘召請하고 久坐衆僧이면 非所以報侍者也오 以己妨人하고 慢藏誨盜면 非所以報寮主也오 多嗔小喜하야 不順病緣이면 非所以報堂主也오 桶杓作聲하야 用水無節이면 非所以報浴主水頭也오 身利溫煖하야 有妨衆人이면 非所以報爐頭炭頭也오 不念修行하고 安然受供이면 非所以報街坊化主也오 飽食終日하야 無所用心이면 非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오 涕唾墻壁하야 狼藉東司면 非所以報淨頭也오 專尙威嚴하고 宿無善敎이면 非所以報淨人也니라 盖以旋風千匝이나 尙有不周니 但知捨短從長하야 共辦出家之事어다 所冀는 獅子窟中에 盡成獅子하고 栴檀林下에 純是栴檀이니 令斯後五百年에 再覩靈山之會니라 然則法門興廢도 係在僧徒니 僧是敬田이라 所應奉重이니 僧重則法重하고 僧輕則法輕이니라 內護旣嚴이라야 外護必謹하리니 設使粥飯主人이라도 一期王化로 叢林執事를 偶爾當權이어든 常宜敬仰同袍하고 不得妄自尊大하라 若也貢高我慢하야 私事公酬인댄 萬事無常이라 豈能長保아 一朝歸衆이면 何面相看이리요 因果無差라 恐難回避니라 僧爲佛子라 應供無殊하니 天上人間이 咸所恭敬이라 二時粥飯을 理合精豊하며 四事供須를 無令闕少니라 世尊二十年遺蔭이 盖覆兒孫이라 白毫相一分功德도 受用不盡하리니 但知奉衆이요 不可憂貧이니라 僧無凡聖히 通會十方하나니 旣曰招提인댄 悉皆有分이라 豈可妄生分別하야 輕厭客僧이리요 旦過寮에 三朝權住어든 盡禮供承하며 僧堂前에 暫爾求齋어든 等心供養할지니 俗客도 尙猶照管커든 僧家를 忍不逢迎가 若無有限之心이면 自有無窮之福이니라 僧門은 和合이라 上下同心이니 互有長短이라도 遞相盖覆하고 家中醜惡을 莫使外聞이어다 雖然於事無傷이나 畢竟減人瞻仰이니 如獅子身中蟲이 自食獅子肉이라 非外道天魔의 所能壞也니라 若欲道風을 不墜하고 佛日이 常明하야 壯祖域之光輝하며 補皇朝之聖化인댄 願以斯文으로 爲龜鏡焉이어다

自 警 文

神心洞照에는 聖黙爲宗이요 旣啓三緘인댄 宜遵四實이니라 事關聖說이요 理合金文이라사 方能輔翼敎乘하고 光揚祖道하야 利他自利에 功不浪施어니와 若乃竊議朝廷政事하며 私評郡縣官僚하며 講國土之豊凶하고 論風俗之美惡하며 以至工商細務와 市井閑談과 邊鄙兵戈와 中原寇賊과 文章技藝와 衣食貨財하며 自恃己長하고 隱他好事하며 揄揚顯過하고 指摘微瑕인댄 旣乖福業이라 無益道心이요 如此游言은 並傷實德이니 坐消信施하고 仰愧龍天이라 罪始濫觴하야 禍終滅頂하나니 何也오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커늘 豈可晏然하야 坐談無義리요

장로자각색선사 귀경문

무릇 두 그루의 계수나무가 그늘을 드리움에 한 송이의 꽃이 상서러움을 나타내었으니 이로부터 총림이 시설된 것을 요약해 보건대 본래 중승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불법의 방향과 내용(법문)을 열어 보여주어야 하는 까닭에 장로가 있고, 대중들에게 수행의 위의와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까닭에 수좌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무거운 살림살이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까닭에 감원이 있고, 대중들을 원만하게 조율하고 화합시켜야 하는 까닭에 유나가 있으며, 대중들을 공양하여야 하는 까닭에 전좌(別坐)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보수, 유지 등의 업무를 보아야 하는 까닭에 직세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출납을 담당해야 하는 까닭에 고두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문서수발의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까닭에 서장이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정교를 수호해야 하는 까닭에 장주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시주들을 맞이하고 접대해야 하는 까닭에 지객이 있음이라. 대중들을 위하여 청하고 부르는 까닭에 시자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옷과 발우를 간수하는 까닭에 요주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탕약을 받들어 공양하는 까닭에 당주(간병)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세탁을 하는 까닭에 욕주와 수두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해 추위를 막는 까닭에 탄두와 노두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탁발하는 까닭에 가방화주(화주)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수고로운 일을 맡는 까닭에 원두(원감)와 마두와 장주(농감)가 있고, 대중들을 위하여 소제하는 까닭에 정두가 있으며, 대중들을 위하여 공급하고 모시는 까닭에 정인이 있느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도를 행하는 인연이 충분히 갖추어지고 몸을 돕는 도구들이 여러모로 이루어져서 만사에 아무런 근심 없어야 일심으로 도를 위하게 되는 것이니, 세간에서는 높고 귀한 존재이며 세상 밖에서는 넉넉하고도 한가한 집단이다. 청정하고도 작위가 없기(無爲)로는 스님들이 으뜸일 것이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찌 은혜를 알고서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겠는가? 새벽에 찾아뵙고 물으며 해 저물어 더욱 물음을 청하여 한 치의 시간도 헛되이 버리지 않아야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높고 낮음에 순서를 지키며 행동거지를 침착하게 하고 자상하게 하여야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밖으로 법령을 준수하고 안으로 규율을 지켜야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육화로 함께 모이되 물과 우유가 서로 섞이듯 하여야 유나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도업을 이루기 위한 이유로 비로소 음식을 먹어야 전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승방에 편안히 거처하며 모든 생활의 도구들을 보호하고 아낄 줄 알아야 직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대중들이 함께 쓰는 물품(상주물)들을 털끝만큼도 사사롭게 취하지 않아야 고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손에 붓을 잡지 않더라도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정진해야 서장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서 옛 사람의 가르침으로 마음을 비추어 보아야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자신의 재능이나 덕성을 감추고 따라다님(이런 저런 행차에)을 일삼지 않아야 지객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거처함에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고 부르면(普請)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시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하나의 정병과 한 벌의 발우로 대중에 살아가는데 마치 산과 같이 하여야 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병이들어 고통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죽을 먹고 약을 복용함에 알맞음(시간과 정도)을 따라야 당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가볍고, 천천히, 조용하고, 잠잠하게 임하고 물을 쓰게된 인연(水因)에 어둡지 않아야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입을 다물고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은 물러 서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탄두와 노두에게 보답하는 도리요, 자신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온전한가 온전치 못한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가방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요, 공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음식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헤아릴 줄 알아야 원두와 마두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물을 조금씩 따라 쓰고 산가지를 사용함에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정두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관대하여 따르기 쉽게 하고 간결하게 하여 일하기 쉽게 하여야 정인에게 보답하는 것이니, 이런 이유로 총림에서는 도업이 더욱 새로워져서 상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한 생(一生)에 갖춤을 취하고(금생에 성불의 인을 갖추고) 중간 근기를 가진 사람들은 길이 성현의 종자를 기르며 비록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는 못할지라도 그 가운데에서 또한 세월을 헛되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이 진실한 승보이며 세상의 복밭이 되는 것이라. 가깝게는 말법 시대에 피안으로 가는 나루터와 다리가 될 것이요, 마침내 지혜와 복덕을 장엄하는 지극한 수행의 결과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만약 혹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고 불법의 수레가 구르지 않는다면 장로로써 대중을 위하는 바가 아님이요.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순조롭지 않고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거동이 엄숙하지 못하면 수좌로써 대중을 통솔하는 바가 아니며, 대중을 포용하는 아량이 너그럽지 못하고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지 못하면 감원으로써 대중을 보호하는 바가 아님이요. 수행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해를 끼치는 무리들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유나로써 대중을 기쁘게 하는 바가 아님이요. 음식의 여섯 가지 맛이 정미롭지 못하고 음식의 세 가지 덕이 갖춰지지 못하면 전좌로써 대중을 받드는 바가 아니고, 요사를 수리하지 않고 일상의 비품들을 갖추지 못하면 직세로써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바가 아니며, 상주물은 쌓아 축적하되 대중의 수를 줄인다면 고두로써 대중을 넉넉하게 하는 바가 아니며, 글 쓰는 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문자가 짧고 익숙하지 못하면 서장으로써 대중을 빛나게 꾸미는 바가 아니고, 책걸상을 정돈하지 않고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이 그치지 않으면 장주로써 대중을 대우하는 바가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며 세속사람을 중히 여기고 스님들을 가볍게 여긴다면 지객으로써 대중을 돕는 바가 아니고, 절하는 모습이 공손하지 못하고 높고 낮은 순서를 잃으면 시자로써 대중의 명령을 따르는 바가 아니며, 청소하고 정돈함에 근실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함에 삼가하지 않으면 요주로써 대중이 편안하게 있도록 하는 바가 아니고, 공손하게 시중들고 편안하게 하지 않고 환자를 불안하고 어지럽게 한다면 당주로써 대중을 위로하는 바가 아니며, 끓인 물이 부족하거나 차고 더운 것이 마땅함을 잃으면 욕주와 수두로써 대중을 살피는 바가 아니고, 미리 미리 준비하여 앞서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생각(추위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게 하면 노두와 탄두로써 대중들에게 마음을 향하는(기울이는) 바가 아니며, 재물에 임하여 공정하지 못하고 시주물의 운용에 힘쓰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가방화주로써 대중을 공양하는 바가 아니고, 땅에는 남는 이익이 있고 사람에게 온전하게 공들이지 않는다면 원두와 마두와 장주로써 대중을 대신하는 바가 아니며, 게으른 마음에 몽땅 밀쳐 둔 채 모든 필요한 물품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정두로써 대중을 섬기는 바가 아니고, 금한 것을 그치지 않고 명한 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정인으로써 대중을 따르는 바가 아님이니라.

만일 대중들이 스승을 가벼이 여기거나 법을 업신여겨서 성을 취하여(성질이 나는 대로 하는 것) 연을 따른다면 (되는대로 하는 것) 장로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앉고 누움에 들쭉날쭉하게 하고 물러나고 나아감에 행동이 어그러지면(乖角) 수좌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의중에 나라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총림을 돌아보지 않으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위아래가 화목하지 못하고 싸움을 심하게 하면 유나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좋은 음식만을 탐내고 거친 음식을 헐뜯으면 전좌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거처하는 자리와 함께 쓰는 물건(僧物)을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직세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이양만을 지나치게 탐하고 상주물을 아끼지 않으면 고두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좋은 붓과 벼루 소지기를 일삼고 분주하게 문장을 짓거나 다듬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서장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부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며 외전만 보고 찾는다면 장주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세속의 선비들을 좇아 모시고 귀한 사람들만 사귀어 친교를 맺는다면 지객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불러 청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대중들과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시자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보관함을 게을리 하여 도둑질을 가르친다면 요주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화를 많이 내고 기쁜 마음은 적게 가져 병연(질병의 올바른 인연이니 치료의 조건이나 방법들이다)에 따르지 않는다면 당주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물통과 표주박으로 소리를 내고 물을 씀에 절용(절약하고 알맞게 쓰는 것)이 없으면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자기 자신에게만 따뜻함을 유리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방해되는 바가 있으면 노두와 탄두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고, 수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안히 공양만 받는다면 가방화주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니며,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며 마음 쓰는 바(나에게 음식이 오기까지의 과정이나 수고로움 등)가 없으면 원두와 마두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담과 벽에 코 풀고 침 뱉으며 변소를 어수선하게 쓰면 정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오로지 위엄만 숭상하고 미리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정인에게 보답하는 바가 아님이니라. 대저 회오리바람이 천 번을 돌아 불어도 오히려 두루 미치지 못한 곳이 있는 법이니, 다만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좇아서 출가한 일에 대하여 함께 힘써야 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바라는 바는, 사자굴 안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나무 숲에서는 온전히 전단이 되는 것이니 이 일로 하여금 이후 오백년에 다시 영취산의 법회를 보게 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러한 즉 법문의 흥폐도 스님들에게 달려 있나니 승가는 공경해야할 복 밭이라. 응당 받들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이니, 승가가 중하면 법도 따라서 중하여지고 승가가 가벼우면 법도 따라서 가벼워지느니라. 안에서 보호함이 이미 엄하고서야 밖에서 보호함이 반드시 신중하게 될 것이니 비록 죽과 밥만 먹고 지내던 사람이라도 한 차례 왕의 덕화로 총림의 소임을 담당하여 뜻하지 않게 권한을 맡게 되었거든 항상 마땅히 함께하는 도반들을 공경하고 숭앙해야 하나니, 망령되게 스스로를 존대하여 높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아만으로 나를 높이고 사사로운 일을 공적으로 갚는다면 만사는 무상하니 어찌 능히 길이 보전할 수 있으리오?(그런 자리를) 하루아침에 대중으로 돌아오면 무슨 면목으로 서로 마주 보겠는가? 인과는 어김이 없으니 회피하기 어려울까 두렵느니라.(자못 회피하기 어렵느니라.)

승가는 부처님의 제자라. 부처님(應供)과 더불어 다를 바 없나니 천상이나 인간이나 모두 공경하는 바이니라. 두 끼니의 죽과 밥도 이치에 맞추어 정미롭고(정갈하고) 풍족하게 해야 하며 네 가지 일(물건)로 공양함에 하여금 빠지거나 부족함이 없게 하여야 하나니라. 부처님께서 남기신 20년의 음덕이 모두 그 자손을 덮어 주고 있음이라. 백호상의 일분의 공덕도 다 받아쓰지 못할 것이니 다만 대중을 받들 것만 알아야 할 것이요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말지니라. 승가는 범부나 성인이 없이 온 세상에 두루 통하나니(모든 곳에서 두루 모였나니) 이미 초제라고 하였다면 모두에게 다 몫이 있는데 어찌 망령되게 분별심을 내어 객승을 업신여기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객실에서 사흘 아침을 권리로 머물거든 예절을 다하여 받들어 모셔야 하며, 승당 앞에서 잠깐 동안 먹을 것을 구하더라도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할지니 세속의 손님도 오히려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승가를 어찌(차마) 받들고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유한한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무궁한 복록이 있을 것이다.

승문은 화합이라. 위아래가 마음이 같아야 하나니 서로 장단점이 있을지라도 번갈아 서로 덮어 주고 집안의 추하고 흉한 일은 하여금 바깥에서 들리지 않게 할지어다.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일에는 손상됨이 없겠지만 필경에는 사람들이 우러르고 숭앙하는 마음이 줄어들 것이니 마치 사자의 몸에서 생긴 벌레가 스스로 사자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도의 무리나 천마가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이니라. 만약 도풍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밝아서 조사들의 영역에 광휘를 더욱 장대하게 하고 황제와 조정의 성스러운 덕화를 돕고자 한다면 바라건대 이 글로써 귀경을 삼을지어다.

자경문

신령스러운 마음을 훤출히 비추는 데는 성스러운 침묵이 으뜸이지만 이미 세 번이나 꿰맨 입을 열었으면 마땅히 네 가지의 실다움을 좇아야 하느니라. 일은 성인의 말씀에 관계하고 이치는 경전에 부합되어야 바야흐로(비로소) 능히 교승을 돕고 조사님들의 도를 빛내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어야 공덕을 헛되이 베푸는 것이 되지 않으려니와 만약 조정의 정사를 몰래 논의하거나 군현의 관료들을 평한다거나 국토의 풍년과 흉년을 말한다거나 풍속의 좋고 나쁨에서부터 상, 공업의 세세한 일과 시정의 자질구레한 말들과 변방의 군대나 무기들과 중원의 도둑들과 문장의 기예와 옷과 식량, 재물 등을 논하는데 까지 이르며 스스로 자기의 장점만 믿고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은 숨기며 드러난 허물만을 드러내어 퍼트리며 작은 허물을 지적한다면 이미 복업을 어그러뜨리는 것이어서 도를 닦는 마음에는 이익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떠도는 말(유언)은 아울러 참된 덕을 손상하는 것이니 앉아서 시주의 시물만 소비하는 것이며 우러러 용천에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죄는 작은 잔이 넘치는 정도(람상)에서 시작되어 그 화는 마침내 정수리까지(전신) 소멸시킬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의 괴로운 불길이 사면에서 함께 타고 있는데 어찌 편안하게 앉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나 하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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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 2016-05-16 (월)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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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