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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4-04-07 오후 8:5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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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맹물과 소금 그리고 공덕과 업장, 중아함, ‘염유경’ -윤영해교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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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물과 소금 그리고 공덕과 업장, 중아함, ‘염유경’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에서 빨리와 산스크리트로 기록되었다. 이들 중에서 빨리어로 기록된 경전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제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된다. 빨리어 경전들은 니카야(Nika-ya)라는 이름으로 묶여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으로 전해져 잘 전승되어 오고 있다. 반면, 주로 북방에서 기록되고 유포된 산스크리트 경전들은 무슬림들의 파괴 때문에 거의 대부분 상실되고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많은 산스크리트 경전들이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되어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유포되어 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제 설법에 가장 가까운 것이 ‘전승(傳承)’이라는 뜻의 ‘아함(阿含, Agama)’이다.
흔히들 ‘아함경’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실제로 아함경이라는 경전은 없다.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들 중 부처님의 실제 설법에 가까운 2088개의 경전들을 한데 모은 것을 아함이라고 한다. 2088개의 경전모음집인 아함은 길이와 형식에 따라 장아함(長, 32경), 중아함(中, 222경), 잡아함(雜, 1362경), 증일아함(增一, 472경)의 넷으로 분류된다.
이들 중 중간 길이의 경전들 222개를 모은 중아함의 제 11경은 ‘소금을 비유로 든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의 염유경(鹽喩經)이다. 이 경의 주제는 업설인데, 부처님은 여기서 업의 법칙들 중 특히 윤리의 법칙을 집중적으로 설파하신다.
업의 윤리 법칙이란 선업을 지으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는 법칙이다. 부처님은 이 업의 윤리 법칙을 소금과 맹물의 비유로 쉽게 설파하신다.
업장은 소금이고, 공덕은 맹물
소금물도 맹물 넣으면 덜 짠맛
“만일 어떤 사람이 착하지 못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고통의 과보를 받는다. … 마치 어떤 사람이 한 냥쭝의 소금을 아주 적은 물에 넣어 짜서 마실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한 냥쭝의 소금이 적은 물을 짜게 해서 마실 수 없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소금이 많고 물은 적으면 짜서 마실 수 없습니다. …. 한 냥쭝의 소금을 갠지스 강의 물에 넣어 짜게 하여 마시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갠지스 강물은 매우 많고 한 냥쭝의 소금은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악업을 지으면 업장(業障)이 쌓이고 선업을 지으면 공덕이 쌓인다. 업장은 소금이고 공덕은 맹물이다. 악업을 많이 지어 업장이 많은 사람은 짜디짠 소금물을 마셔야 한다. 그처럼 업장을 많이 쌓은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에 꼭 맞는 고통을 받는다.
반면에 선업을 많이 지어 공덕을 많이 지은 사람은 시원한 맹물을 마는 것과 같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에 걸 맞는 복락을 누린다.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이 지은 악업의 결과인 업장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인생은 아무리 애를 써도 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우연도 아니고 재수 탓도 아니다.
선업에 공덕이 생기고 악업에 업장이 쌓이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분명하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인과의 법칙이다. 업의 인과 법칙은 냉혹하리만큼 엄격하여 어떠한 예외도 에누리도 없다. 심은 대로 거둘뿐이다.
그렇다면 업의 인과법칙은 너무나 냉엄하여 업장이 많은 사람은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짠 소금물이라도 자꾸 맹물을 넣으면 먹을 만큼 싱겁게 만들 수 있다. 고통스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업장 탓임을 알고 끊임없이 공덕을 지어야 한다.
윤영해/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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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