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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탐현기 제14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27 조회 : 2156
화엄경탐현기 제 14권.hwp (159.7K), Down : 58, 2009-01-13 11: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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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3-10-22 오후 8:33:00]
제 목 :
화엄경탐현기 제14권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중 제 14권

화엄경탐현기 제14권

법장 지음

김호성 번역

22. 십지품(十地品) ⑥ 

제8지이다. 일곱 가지 문은 앞과 같다.

첫째, 이름을 해석한다[釋名]. 부동(不動)이라는 이름에도 역시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첫 번째 입장은 『섭론』1)에서는 “모든 모습에 공용의 행이 있으므로 말미암아서 능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부동지(不動地)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무성과 세친도 모두 이 풀이와 같다. 무성(無性) 석2)의 뜻은, 제7지 중에서는 행은 움직여도 모습[相]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행과 모습이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두 번째 입장은 『금광명경』3)에서는 “무상(無相)의 올바른 사유로써 자재를 닦아 얻어서 모든 번뇌의 행이 능히 움직이지 못하게 하므로 부동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셋째, 세 번째 입장은 『성유식론』4)에서는 “분별함이 없는 지혜가 자유롭게[任運] 상속하여 모습․작용․번뇌가 능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양섭론』의 세 가지5) 뜻 역시 이러한 설과 같다. 『해심밀경』6)에서는 “무상(無相)에서 무공용(無功用)을 얻으며, 모든 행 중에서는 현전의 번뇌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으므로 말미암아서 부동이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십주론』7)에서는 “천마․범․사문․바라문이 능히 그 원(願)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부동지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인왕경』8)에서는 ‘등관지(等觀地)’라고 이름한 것이다.

둘째, 온 뜻[來意]이다. 역시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앞의 세 가지 지(地)는 세간에 기탁하여 같다고 하였으며 뒤의 네 가지 지는 3승(乘)의 법에 기탁하였는데, 제8지 이상은 1승(乘)에 기탁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장엄론』9)에서는 제7지를 해석하면서 ‘1승에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양섭론』10) 역시 8지 이상은 1승이라고 설하였으니, 해석해 말하면 앞의 3승을 차별하는 계위로부터 1승으로 나아가 들어가므로 오는 것이다. 둘째, 앞의 계위에서 비록 순수한 무상관(無相觀)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가행(加行)의 작의(作意)를 기다려야 비로소 증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이 지위에서는 순숙하여 가행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자유롭게[任運] 나타나기 때문에, 그 다음에 밝히는 것이다. 셋째, 앞은 모두 분단(分段)이고 여기서는 오직 변역(變易)이니, 그러므로 온 것이다.

셋째, 떠나야 할 바 장애이다. 『지론(地論)』11)에 의하면, ‘무상이 행을 갖고 있는 장애[無相有行障]’를 떠나는 것이다. 『성유식론』12)에서 말하였다.

“무상 중에서 가행을 짓는 장애[無相中作加行障]이니, 이른바 소지장 중 구생의 일분이 무상관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앞의 5지는 유상관(有相觀)이 많고 무상관은 적었고, 제6지에서는 유상관은 적고 무상관은 많았으며, 제7지 중에서는 순수하게 무상관뿐이었으므로 비록 언제나 상속된다고 하더라도 가행이 있었던 것인데, 무상 중에 가행이 있으므로 말미암기 때문에 능히 자유롭게 그 모습[相]과 국토[土]를 나타내지 못한다. 이와 같이 가행은 8지 중의 공용이 없는 도를 장애하기 때문에 만약 제8지에 들어가게 되면 문득 영원히 끊을 수 있게 되며, 그것이 영원히 끊어지게 되면 두 가지 자재13)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8지에서는 두 가지 어리석음과 추중의 번뇌를 끊는 것이라 설하는 것이니, 첫째는 무상에 대하여 공용을 짓는 어리석음[於無相作功用愚]이며, 둘째는 상자재(相自在)에 대한 어리석음이니, 모습 가운데서 자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국토와 모습의 일부분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8지 이상에서는 순수한 무루(無漏)의 도가 자유롭게 일어나기 때문에 삼계의 번뇌는 영원히 현행하지 않는다. 제7식 중의 미세한 소지장이 오히려 가히 일어날 수 있으며, 생공(生空)의 지(智)․과(果)는 그것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석해 말하면, 호법종(護法宗)14)에 의하면, 무상 중에는 가행지가 있으며 체는 장애가 아닌 것이니 선성(善性)이기 때문이다. 끊어야 할 바 장애로 말미암아서 가행을 짓게 하는 것이므로 가행장(加行障)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7지에 가행이 있기 때문에, 비록 금 등의 여러 가지 모습과 국토를 나타내더라도 자유롭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장애가 된다. 생공(生空)의 지(智)․과(果)라는 것은, 이른바 생공의 지혜가 이끄는바 후득지(後得智) 및 멸진정(滅盡定)이다. 『금광명경』15)에서는 “첫째는 무상의 법에 많은 공력을 활용하는 무명이며, 둘째는 상자재(相自在)에 집착하여 가히 건너기 어려운 무명이다”라고 하였다. 해석해 말하면, 여기서 미혹하게 되는바 현재의 모습 역시 국토에 거두어지는 것이니, 넓음이 좁음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양섭론』16) 등도 모두 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증득하는바 법계이다. 이른바 법계의 증감(增減)이 없는 뜻17)을 증득하는 것이다. 세친의 석18)에서는 “이른바 이 가운데서는 잡염(雜染)이 감소될 때도 감소되는 바가 없으며, 청정(淸淨)이 증가될 때도 증가됨이 없다”라고 하였다. 무성의 석19)에서는 “법 밖에 작용이 없으므로 증가함이 없고, 모든 법이 부서지지 않으므로 감소함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성 석의 그 다음 해석20)은 세친과 같다. 『중변론』21)에서는 “이에 통달하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원만히 증득한다. 모든 청정과 잡염의 법 가운데서 한 법도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해석해 말하면, 이는 『지론(地論)』22)과 같다. 『성유식론』23)에서 말하였다.

“이른바 이러한 진여는 증감(增減)의 집착을 떠났으니, 염정(染淨)에 따라서 증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이는 ‘상토자재소의진여(相土自在所依眞如)’라고도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만약 이러한 진여를 증득하고 나면, 모습을 나타내고 국토를 나타내는데 모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세친의 석24)에서 말하였다.

“모든 모습 가운데서 자재를 얻는 것을 ‘상자재(相自在)’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욕망하는 바에 따라서 곧 모습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국토를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 자재를 얻는 것을 ‘토자재(土自在)’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국토로 하여금 금 등의 보배를 이루고자 하면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해석해 말한다. 모습은 현신(現身) 등 모습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국토는 오직 기세계(器世界) 등뿐이다. 이 지(地) 아래의 본문은 세 가지 세간과 열 가지 자재를 갖추고 있다.

다섯째, 이루는 바 행이다. 역시 세 가지가 있다. 10지 중의 대원행(大願行)과 이 지에서 성취한 무생법인의 행과 상․토 자재의 행이다. 『장엄론』25)에서는 “제8주는 비록 불토를 청정히 하지만 지음[作]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래의 본문에서 찾아보라.

여섯째, 얻는바 과보이다. 『양섭론』26)에서는 “증감이 없는 법계의 정자재(定自在) 등에 통달하면 법신의 과를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광명경』27)에서는 “8지에서 발심하면 현증삼매(現證三昧)를 얻는다”라고 하였다. 이 지의 행의 과와 계위의 과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 중에 역시 셋이 있다.

첫째, 찬청분이다. 그 중에 열다섯 송을 셋으로 나눈다. 첫째, 두 송은 천왕과 대중이 법을 기뻐하여 공양을 올리는 것을 읊은 것이다. 둘째, 열두 송이 있으니 천녀가 음악[歌樂]으로써 덕을 찬탄하고 공양하는 것을 읊은 것이다. 이 중에 처음 세 송은 음악을 지어서 총체적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고, 그 다음 세 송은 세 가지 세간의 자재한 덕을 따로 찬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세 송은 3륜(輪)의 교화를 따로 찬탄하는 것이고, 그 다음 두 송은 부처님께서 신력(神力)으로 거두어주심을 찬탄하는 것이며, 뒤의 한 송은 찬탄함을 마치고 침묵함을 매듭짓는다. 셋째, 마지막 한 송은 상수(上首)가 설법을 청함을 읊은 것이다.

둘째, 정설분(正說分)인데 논28)에서는 일곱으로 나눈다. 첫째와 둘째는 지(地)에 나아가는 방편이다. 첫째, ‘총명방편작집지분(總明方便作集地分)’이라는 것은 원방편(遠方便)인데, 총체적으로 앞의 일곱 가지 지는 이 지(地)에서 집성(集成)하는 방편들을 짓는 것이다. 둘째, ‘득정인분(得淨忍分)’이라는 것은 근방편(近方便)이니, 이른바 앞의 지에서 얻은 무생인의 빛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성숙하게 닦아서 깊은 청정이 되게 하는 것이다. 셋째, ‘득승행분(得勝行分)’이라는 것은 초주지(初住地)의 행이니, 이른바 앞에서 말한 정인(淨忍)에 의지하여 뛰어난 닦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넷째, ‘정불국토분(淨佛國土分)’이라는 것은, 정주지(正住地)의 처음이니 앞에서 말한 승행(勝行)에 의지하여 불토(佛土)의 행을 깨끗이 닦음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다섯째, ‘득자재분(得自在分)’이라는 것은, 정주지가 가득 찬 것이니 정토(淨土)의 행으로 말미암아서 덕을 이루어 걸림 없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대승분(大勝分)’이라는 것은, 지위가 가득 찬 행[地滿行]이니 이 지를 앞의 지와 대조해 볼 때 모두 다 뛰어난 것인데, 이제 다시 지위가 가득 찬다고 하는 것은 뛰어남 중에서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대승(大勝)’이라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석명분(釋名分)’이라는 것은, ‘부동’이라는 이름은 덕을 분별하여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다. 이는 시종(始終)에 다 통하는 것이니, 해석은 지위가 가득 차는 것에 있다.

초분 중에 나아가서는 총체적으로 앞의 일곱 가지를 거두어서 두 가지 모습[二相]으로 하였으니, 모든 지에 공통적인 행을 ‘동상(同相)’이라 하고, 모든 지마다 다르게 닦는 것을 ‘별상(別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동상 중에 세 구절이 있다. 첫째, ‘묘행혜(妙行慧)’라는 것은 그 증득한 도이니, 이른바 ‘두 가지 무아의 상상(上上)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초지 이래로 두 가지 무아를 증득하여 더욱 뛰어나서 여기에 이르기 때문에 ‘상상(上上)’이라 말하는 것이다. 둘째, ‘방편도정(方便道淨)’이라는 것은 머물지 않는 도의 청정인데, 이른바 자비와 지혜가 모두 작용하여 치우쳐서 집착함이 없는 것이다. 셋째, ‘조도법(助道法)을 잘 모은다’는 것은 저 방편지가 행하는 바에 거두어져서 조보리분법(助菩提分法)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이른바 행은 앞에서 말한 증방편(證方便)이고 지(智)는 앞에서 말한 머물지 않음[不住]이니, 저 두 가지에 거두어지는 조도법이다.

이하는 별상을 밝히는 것인데, 일곱이 있다. 초지의 열 가지 대원(大願)은 능히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이고, 2지 중에서는 10선 등의 행을 행하는 것이니 이는 불력으로 옹호하는 바이다. 3지 중에는 ‘싫어함에서 물러서지 않는 선정 등을 얻는다’는 것은 신통과 무량 등을 똑같이 취하는 것이니, ‘스스로의 선근력’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통달하는 것을 얻기 때문에 ‘힘을 얻는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4지 중에서 설하는바 ‘열 가지의 법지(法智)로써 중 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앞의 논29) 중에서 ‘지장(智障)의 청정함과 뛰어남’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불법(佛法)에 통달하고자 염한다’는 것은 이를 해석하여 그와 같게 한다. 이른바 저 열 가지 법지를 여기서는 ‘불법’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5지 가운데 열 가지 깊고 청정한 마음의 평등을 ‘직심(直心)․심심(深心)’이라고 이름한다. 6지 중에서는 앞에서 말한 대비를 으뜸으로 삼으며, 대비를 증상(增上)으로 삼는다. ‘인연의 집(集)을 관찰한다’는 것은 대비가 만족한 것이니, 역시 거론하여 관법(觀法)을 이루는 것이다. ‘복지(福智)를 성취한다’는 것은 이를 해석하여 그와 같게 하는 것이다. 7지 중에 두 구절이 있는데, 첫째 구절은 앞에서 말한 공 가운데의 방편지(方便智)와 유(有) 가운데의 수승행(殊勝行)이다. 이른바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를 해석하여 이와 같게 하는 것이니, ‘대비’ 등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구절 ‘무량의 중생계로써 무량한 지도(智道)에 들어간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열 가지 무량이다. 무엇 때문에 앞의 여섯 가지 지는 각기 한 구절이 있는데, 제7지는 두 구절이 있는 것인가? 해석하면, 이는 근방편이기 때문이다.

[문] 무엇 때문에 제8지의 처음에 총체적으로 앞의 지를 모으는가?

[답]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 중 이러한 예는 넷이 있다. 첫째, 10주(住)의 첫째에서 총체적으로 10신(信)을 모으는 것이니, 『본업경』30)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이는 퇴(退)와 불퇴(不退)를 기준으로 해서 그 영역을 나누기 때문에 이러한 결회(結會)를 짓는 것이다. 둘째, 초지의 가행은 총체적으로 10지 이전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십회향품」의 설과 같다. 이는 비(比)와 증(證)을 기준으로 해서 영역을 나누는 것이다. 셋째, 제8지의 처음에서 앞의 일곱 가지 지를 총체적으로 모으는 것으로 여기 본문의 설과 같으니, 이는 공용과 무공용에 나아가서 영역을 나누기 때문이다. 넷째, 제10지의 처음에서 총체적으로 아홉 가지 지를 모으는 것이니, 아래 본문의 설과 같다. 이는 인위(因位)가 가득 참을 기준으로 해서 총체적으로 앞의 인(因)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또 해석하면 이러한 네 곳의 첫째는 10천(千) 겁이 가득 참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둘째는 첫째 아승기가 가득 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는 둘째 아승기가 가득 참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넷째는 셋째 아승기가 가득 참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이러한 설을 짓는다.

둘째,31) 정인분(淨忍分) 중의 글에 셋이 있다. 처음 열 구절은 바로 무생인(無生忍)을 밝히는 것이고, 그 다음 네 구절은 무생인의 청정함을 밝히는 것이며, 마지막 한 구절은 인(忍)을 맺어서 계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논 중에서는 다만 앞의 두 가지를 해석하는데, 넷32)으로 거두어들인다. 첫째는 모습을 깨뜨리는 것이며, 둘째는 성품을 깨뜨리는 것이다. 셋째는 인(因)이 사라지는 것이며, 넷째는 과(果)가 떠나는 것이다. 또한 앞의 두 가지는 모습을 깨뜨려서 진리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뒤의 둘은 진실을 증득하여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또 계위에 기탁함을 기준으로 하면 처음 하나는 가행지(加行智)에 있는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정체지(正體智)에 있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후득지(後得智)에 있는 것이며, 그 수차별(數差別)의 한 가지는 시종(始終)에 통하는 것이다. 『불성론』33)의 「삼성품(三性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무생법인을 얻었다고 한다면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3성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곧 성립할 수 있다. 여래는 분별성(分別性)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본래무생인(本來無生忍)이라고 설하는 것이며, 의타성(依他性)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자성무생인(自性無生忍)이라고 설하는 것이고, 진실성(眞實性)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구고본성무생인(垢苦本性無生忍)이라 설하는 것이다.”34)

첫째, ‘사무생(事無生)’ 중에 나아가 논은 일곱으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처음 넷은 증가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셋은 감소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니, 곧 증감(增減)이 없는 법계이다. 논 중에서는 먼저 일곱 가지 실체[七實]를 세우고서 이러한 실체를 대치함으로써 무생(無生)을 나타내고 있다.35) 첫째, ‘정분(淨分)의 법 중에 본유(本有)의 실체’라고 하는 것은 본성주성(本性住性)을 헤아려서 사물의 유(有)를 삼는 것인데, 이를 대치하기 위해서 ‘모든 법의 본래무생(本來無生)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신신생(新新生)의 실체’라는 것은 습소성성(習所成性)을 헤아려서 실체로 삼는다. 이를 대치하기 때문에 ‘일어남이 없는 것[無起]’이다. 셋째, ‘상(相)의 실체’라는 것은, 앞의 두 가지 성품이 낳는바 행상(行相)을 헤아리는 것이니 이를 대치하기 때문에 ‘모습이 없는 것[無相]’이다. 넷째, ‘후제(後際)의 실체’라는 것은, 불과(佛果)의 후제(後際)에서 여러 번뇌를 벗어남을 헤아리는 것인데 이를 대치하기 때문에 ‘이룸이 없는 것[無成]’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하니, 넷 중에서 처음 하나는 자성주불성(自性住佛性)이고, 그 다음 둘은 인출불성(引出佛性)이고, 마지막 하나는 지득과불성(至得果佛性)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하니, 처음 하나는 도(道) 이전의 범부의 지위이고 그 다음 하나는 3현(賢)의 지위이며, 그 다음 하나는 지상(地上)의 지위이고, 마지막 하나는 도 이후의 지위이니, 총체적으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하니, 이 네 가지는 전전(展轉)한다. 의심을 해석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선제(先際)의 실체’라는 것은 불과의 후제를 상대하여 범부의 염오를 설하여 선제로 삼는 것이니, 이를 대치하기 때문에 ‘부서짐이 없는 것[無壞]’이라 하는 것이다. 번뇌가 곧 공이니 가히 부서질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진실로 중생심 중에는 각기 두 가지[二分]가 있다. 첫째는 여래장(如來藏)이니 ‘정분(淨分)’이라고 이름하므로 앞에서와 같이 정분은 생함이 없는 것이라 설하는 것이다. 둘째는 번뇌장(煩惱藏)을 ‘염분’이라 이름하므로 여기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염분은 생함이 없는 것이다. 여섯째, ‘잡염의 실체는 정분 중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른바 수행위(修行位) 중에서 염분을 등지고 정분으로 향하여 온다는 것이니 이를 대치하기 때문에 ‘옴이 없다[無來]’고 하는 것이다. 일곱째, ‘다함의 실체가 있으니 모든 중생이다’라고 하는 것은 중생이 열반을 향하여 가는데, 이를 대치하므로 ‘감이 없다[無去]’고 말하는 것이다. 『논경』에서는 ‘다함이 없다[無盡]’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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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 역, 『섭대승론본』 하권.

2) 무성, 『섭대승론석』 제7권.

3) 『합부금광명경』 제3권.

4) 『성유식론』 제9권.

5) 세 가지 뜻은 모든 법․모든 모습․모든 공용이 능히 보살의 무분별심(無分別心)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말한다.[진제 역, 『섭대승론석』 제10권]

6) 『해심밀경』 제4권.

7) 『십주비바사론』 제1권.

8) ‘등관법류지(等觀法流智)’라고 하였다.[『인왕반야바라밀경』 상권]

9) 『대승장엄경론』 제13권.

10) “여래는 정법을 성립시키는 데 셋이 있다. 첫째는 소승을 성립시키고, 둘째는 대승을 성립시키며, 셋째는 1승을 성립시키는 것이다.”[진제 역, 『섭대승론석』 제9권]라고 하였는데, 이 1승을 8지 이상에 배대한 것이다.

11) 『십지경론』 제1권.

12) 『성유식론』 제9권.

13) 상자재(相自在)와 토자재(土自在).

14) 법상종. 『성유식론』이 호법의 입장을 위주로 이루어진 논서인데, 중국의 법상종이 『성유식론』을 소의로 해서 성립한 종파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15) 『합부금광명경』 제3권.

16) 진제 역, 『섭대승론석』 제10권.

17) “제8지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의 뜻과 상자재의지(相自在依止)의 뜻과 토자재의지(土自在依止)의 뜻으로 말미암는다.”[『섭대승론본』 하권].

18) 세친, 『섭대승론석』 제7권.

19) 무성, 『섭대승론석』 제7권.

20) “혹 염법이 감소할 때에도 여기에 감소하는 것이 없으며, 정법이 증가할 때에도 여기에 증가할 것이 없다”라는 문장.

21) 『변중변론』 상권.

22) 『십지경론』 제10권.

23) 『성유식론』 제10권.

24) 세친, 『섭대승론석』 제7권.

25) 『대승장엄경론』 제13권.

26) 진제 역, 『섭대승론석』 제10권 참조.

27) 『합부금광명경』 제3권. 현증삼매는 현재불현전증주삼매(現在佛現前證住三昧)를 말한다.

28) 『십지경론』 제10권.

29) 『십지경론』 제6권.

30) 『보살영락본업경』 상권.

31) 정설분을 일곱으로 나누는 데, 그 둘째이다.

32) 사(事)․자성(自性)․수차별(數差別)․작업차별무생(作業差別無生) 등이다.

33) 『불성론』 제2권.

34) 분별성은 본래 체가 없기 때문에 생함이 없는 것이고, 의타성은 인연에 의해서 생하는 것이지만 저절로 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성(自性)이 생하는 것도 아니며, 진실성은 모든 번뇌의 때[垢]를 떠나기에 본생(本生)이 생하는 것이 아니다.

35) 논의 7실(實)을 대치하는 경의 7무생(無生)은 다음과 같다. 본유실(本有實):본래무생(本來無生), 신신생실(新新生實):무기(無起), 상실(相實):무상(無相), 후제실(後際實):무성(無成), 선제실(先際實):무괴(無壞), 잡염실(雜染實):무래(無來), 진실(盡實):무거(無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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