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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탐현기 제15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28 조회 : 2058
화엄경탐현기 제 15권.hwp (172.9K), Down : 77, 2009-01-13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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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3-10-22 오후 8:34:00]
제 목 :
화엄경탐현기 제15권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중 제 15권

화엄경탐현기 제15권

법장 지음

김호성 번역

23. 십명품(十明品)

첫째, 이름을 해석한다[釋名]. 이른바 묘용이 자재하여 자세히 비추므로 ‘밝다’고 칭하며, 밝음의 작용이 무한하므로 원만함에 부쳐서 십(十)으로 분별한다. 곧 대수석(帶數釋)1)이다.

둘째, 온 뜻[來意]이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이하 다섯 품2)의 온 뜻을 논하는 것이다. 이른바 앞에서는 깨달음의 지위가 원만히 이루는 것을 나타낸 것이지만, 이 이하는 그 승진분의 행과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앞은 지위의 체(體)였는데, 여기서는 행의 작용을 분별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앞은 계위 안의 행이었는데, 여기서는 계위 뒤의 행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앞은 근본지의 깨달음이 원만하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후득지의 큰 작용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서 여기에 오는 것이다.

옛사람3)이 역시 등각과 묘각에 배대(配對)한 일이 있었지만, 이 경전에 의지하여 이러한 뜻을 분별하지 않으니, 하물며 앞의 법운지(法雲地)의 종심(終心)에서 이미 등각의 뜻을 나타냈음에랴.

둘째, 이 품을 따로 밝히는 것이니, 이른바 앞4)의 10자재의 물음에 대하여 답하는 것이다. 별행(別行)의 『보살본업경』5)의 저 물음 중에서 ‘10명(明)’이라 이름하였기 때문이다.

셋째,6) 종취(宗趣)이다. 곧 이 10명은 여리지(如理智)․여량지(如量智)의 두 가지 지혜의 명용(明用)이 자재하여 걸림 없음을 종(宗)으로 삼는다.

10명의 뜻을 간략히 세 가지 문으로 나눈다.

첫째,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타심(他心)이고, 둘째는 천안(天眼)이다. 셋째는 숙명(宿命)이고, 넷째는 미래제(未來際)이다. 다섯째는 천이(天耳)이고, 여섯째는 무외신력(無畏神力)이다. 일곱째는 음성(音聲)이고, 여덟째는 색신(色身)이다. 아홉째는 진실(眞實)이며, 열째는 멸정(滅定)이다. 이 중에 멸정은 상응(相應)7)하므로 그렇게 일컬어지고, 천안과 천이는 취(趣) 및 감각기관[根]으로부터 이름된 것이다. 나머지는 경계를 좇아서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열 가지는 모두 지혜의 업용(業用)이기 때문에 다 함께 ‘지명(智明)’8)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체성이다. 모두 큰 지혜로 체성을 삼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현(普賢)․성기(性起)의 지혜9)에 통한다. 만약 모습에 따라서 이를 나누면 앞의 여덟 가지는 여량지이며 뒤의 둘은 여리지이나, 진실에 의거하면 오직 한결같이 걸림 없는 지혜일 뿐이다. 뒤의 두 가지 명(明) 역시 작용을 일으키는 데 걸림 없기 때문이며, 앞의 여덟 가지 역시 적정에 즉함을 없애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여러 문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 아래 「이세간품」10)의 10명과 상섭(相攝)하는 것이다. 저 「이세간품」의 글에서는 앎의 대상이 명료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업용이 자재함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다. 오직 저 「이세간품」의 넷째인 ‘불가사의하고도 정묘(淨妙)한 음성을 출생(出生)하시어 무량한 세계에서 널리 듣지 못함이 없는 방편의 지명’, 이 하나만은 업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 「십명품」과 같은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것[別事]이다.

둘째, 10통(通)11)과 상섭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중에 타심․천안․숙명․천이는 이름과 같이 저 10통 중의 네 가지 신통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중의 무외신력12)은 다섯째 ‘불가사의한 자재신력을 출생하여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는 지통(智通)’ 및 일곱 번째 ‘일념 중에 불가설불가설 세계에 갈 수 있는 지통’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의 색신장엄(色身莊嚴)13)은 저 10통의 여섯째 ‘한 몸에 불가사의한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지통’과 아홉째 ‘불가설불가설의 화신(化身)을 출생하여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는 지통’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저 10통 중의 여덟째 ‘불가사의한 장엄구(莊嚴具)를 내어서 모든 세계를 장엄하는 지통’ 역시 여기에 거두어지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의보를 장엄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정보를 장엄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의 미래제지명(未來際智明) 역시 저 천안통 속에 거두어지는 것이니, 천안통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의 음성명(音聲明)14) 역시 천이통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여기의 마지막 두 가지 명(明)15)은 저 10통의 열째 ‘불가설의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불가사의하게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는 지통’을 거두어들인다. 나머지는 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론(智論)』 중의 3명(明)과 상섭하는 것인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3명에 거두어들여지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 『지론』16)에서는 또한 2승(乘)이 얻는 바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령 불보살이 얻는 3명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의 열 가지 중에서는 단지 셋으로 다섯을 거두어들일 뿐 또한 모두를 다 거두어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천안명은 둘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른바 천안지명 및 미래제지명이다. 숙명명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누진명은 두 가지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른바 마지막 둘17)이다. 『열반경』18)에 의하더라도 역시 3명이 있다. 첫째는 제불명(諸佛明)이니, 이른바 일체지(一切智)이다. 둘째는 보살명(菩薩明)이니, 이른바 반야바라밀이다. 셋째는 무명명(無明明)이니, 이른바 필경공(畢竟空)이다. 여기와는 같지 않다.

넷째, 6신통(神通)과 상섭함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6신통에 거두어들여지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6신통 역시 2승이 얻기 때문이다. 둘째는 만약 부처님이 얻은 바라면 거두어들여서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6신통 중에서 천안통․천이통․신족통․누진통의 이들 네 가지가 각기 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열이 된다. 곧 천안통은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둘이 있으니, 미래 생사의 지명 역시 천안으로 보는 바이기 때문이다. 천이통은 성스러운 가르침을 듣는 것 및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둘로 나눈다. 신족통은 업용 및 색신을 기준으로 해서 둘로 나눈다. 누진통은 정(定)․혜(慧)를 기준으로 해서 둘로 나누는데 아홉째는 혜이다. 나머지 둘19)은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6신통으로 열 가지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다섯째, 신통과 명(明)의 차별이다. 『지론』 제3권20)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문] 신통과 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 과거 숙명의 일을 곧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이름하며, 과거 인연의 행업을 아는 것을 ‘명’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남을 곧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이름하며, 행업의 인연이 만나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음을 ‘명’이라 이름한다. 다시 곧바로 번뇌[結使]를 다하는 것을 알아서 다시금 생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번뇌가 생하지 않는 것을 ‘누진통’이라 이름한다. 만약 번뇌가 다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이름한다.

여섯째, 교(敎)를 기준으로 해서 다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소승․3승이라면 모두 3명과 6통이 다만 분제(分齊)가 다를 뿐이지만, 만약 1승이라면 10명과 10통은 앞의 경우와는 역시 넓고 좁은 차이가 있다.

일곱째, 알아야 할 분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지론』 제3권21)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3명은 2승도 역시 얻을 수 있으나, 다만 원만하지 못하다. 이른바 과거에 대하여는 혹은 1세(世)를 알고 궁극적으로 8만 세(世)까지 알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미래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 또 일념에 4제(諦)와 15심(心)과 결사(結使)의 생(生)ㆍ주(住)ㆍ멸(滅) 등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3세 중생의 번뇌가 다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해석해 말하면 소승은 다만 3명만을 아는 것이니, 능히 두루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3승은 3명이 평등하게 두루함을 아는 것이고, 1승은 10명이 거듭거듭 두루 인다라망(因陀羅網)과 같음을 아는 것이다. 이른바 한 생각이 9세(世) 등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한 티끌 속에 10찰(刹)이 있으며, 나머지 생각과 나머지 티끌 모두 역시 그렇다. 이 중에 있는 바를 모두 여실히 아는 것이다.

여덟째, 3업을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열 가지 중에서 천이 및 음성의 경계는 어업의 청정함이고, 신력 및 색신은 신업이 청정한 것이며, 나머지 여섯은 의업의 청정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자체(自體)에 의거하면 모두 의업일 뿐이니, 모든 것이 지명(智明)이기 때문이다.

아홉째, 보는 것[見] 등을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열 가지 중에 둘은 보는 것이니, 이른바 천안 및 미래이다. 둘은 듣는 것[聞]이니, 이른바 천이 및 음성이다. 나머지는 모두 지혜이다.

열째, 건립(建立)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3삼승 등에서는 다만 알아야 할 3세를 기준으로 해서 3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기 1승의 이치의 실다움[理實]에서는 명의 작용이 한량없어서 법칙에 의지하여 원만함을 표하는 것이니, 열 가지에 부쳐서 나타내기 때문에 오직 열 가지를 설할 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넷째,22) 본문을 해석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10명을 바로 밝히는 것이고, 둘째 ‘안주한다’ 이하는 찬탄하여 뛰어남을 나타내는 것을 매듭짓는다.

앞의 것 중에서 첫째는 수(數)를 드는 것이고, 둘째는 해석하는 것이며, 셋째는 수를 매듭짓는 것이다. 해석 중에서 10명을 곧 10단(段)으로 한다. 하나하나의 문단마다 각기 둘이 있으니, 첫째는 해석이고, 둘째는 매듭지음이다.

첫째,23) 선지타심명(善知他心明)이다.

해석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이 1대천세계[大千界]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둘째 ‘이러한 백 세계’ 이하는 시방의 가없는 세계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앞의 것 중에서 첫째는 총체적인 것이고, 둘째 ‘이른바’ 이하는 개별적인 것이며, 셋째 ‘이러한’ 이하는 매듭지음이다. 개별적인 것 중에서 30가지 마음24)을 아는 데, 둘이 있다. 첫째는 행을 기준으로 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성문심(聲聞心)’ 이하는 과보를 기준으로 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이다. 앞의 것 중에서 첫째 3성심(性心)25)은 총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이고,

둘째 ‘광심(廣心)․협심(狹心)’은 선심 중에서 차별을 나누는 것이다. 셋째, ‘악심(惡心)’과 ‘승심(勝心)’은 위의 선하지 않음에 수순하는 것을 ‘악심’이라 이름하며, 이와 반대인 것을 ‘승심’이라 이름한다. 무기(無記)는 흐름에 수순하는 마음이고, 이와 반대인 것을 ‘배생사심(背生死心)’이라고 한다. 둘째26) 과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보살심’은 광심․승심이며, 2승은 협심, 3승은 모두 배생사심이다. 8부(部)의 마음27)은 생사의 흐름에 수순하며 3악도의 중생은 악을 행함이니,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28) 천안명(天眼明)이다.

해석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이다. 둘째, ‘선악’ 이하는 보는바 경계를 내는 것이니, 이 중에 ‘선악취(善惡趣)’ 등은 통틀은 것[通]이며, ‘천(天)․용(龍)’ 등은 개별적인 것[別]이다. 셋째, ‘보살’ 이하는 천안의 능히 봄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 중에 ‘장애가 없으며 명정(明淨)한 천안’은 소지장(所知障)이 다하면 이러한 과보에서 자재명(自在明)을 얻기 때문이다. 이하는 보는 작용으로서 현재 중생의 생사 등을 보는 것이다. 『지론(智論)』 「육도품(六度品)」29)에서 “보살의 천안에 둘이 있는데, 닦음으로 얻는 것[修得]과 과보로 얻는 것[報得]이다”라고 하였다. 천안을 얻었으므로 시방의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것이며 염불삼매를 얻는다. 이는 과보로 얻는바 5통행(通行)의 보살도인 것이다.

[문] 만약 천안이 감각기관으로써 보는 것이라면 감각기관은 장애이므로 마땅히 장애 속의 색(色)은 볼 수 있지만 장애 밖의 색은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답] 닦아서 얻는바 천안은 감각기관을 ‘천안통(天眼通)’30)이라 이름하지만, 신통은 혜(慧)로써 체(體)를 삼기에 장애 밖의 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문]31) 만약 장애 밖의 색을 볼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성문․연각․보살의 봄[見]에는 멀고 가까움에 같지 않음이 있는가?

[답] 통혜(通慧)에는 조금 증가함이 있기 때문에 봄에 멀고 가까움이 있으니,32) 마치 자석이 모든 이르지 못하는 곳은 빨아들이지 못함과 같다. 이 중에서 ‘회전하는 바와 같다’는 것은, 이른바 이러한 부정업(不定業)이 회전하여 고침이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33) 숙명명(宿命明)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나와 남의 본사(本事)를 기억해 아는 것이고, 둘째 ‘또……을 기억하다’ 이하는 과거 모든 부처님의 인과 등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는 중생을 위하여 세상에 나신 부처님이시므로 대부분 8상(相)을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살이 9세(世)의 눈을 얻어서 과거․현재의 법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시는 바가 한량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과거의 법이고, 만약 사라지지[落謝] 않는다면 과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사라졌다면 곧 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며, 법이 없으므로 진실이 아님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다만 일찍이 겪은 일을 말하면 마음 중의 종자와 이미지[影]가 현전하므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아는 자는, 이는 곧 스스로의 마음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지 그러한 법을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이는 일찍이 일을 겪지 않았으면 마땅히 기억해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역시 다만 현재만을 보는 것이고, 과거를 보지 않으니 어찌 ‘숙주지(宿住智)’라 이름하겠는가. 나머지 글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미래제지명(未來際智明) 중에도 둘이 있다. 첫째는 미래 중생의 업보의 모습을 아는 것이고, 둘째 ‘미래……를 안다’ 이하는 미래 부처님의 인과의 모습을 아는 것이다.

앞의 것 중에서 첫째는 총체적으로 아는 것이고, 둘째 ‘중생의 업을 안다’ 이하는 따로 아는 것인데, 간략히 열 가지 대구[十對]34)를 든다. 첫째는 ‘업’ 과 ‘보’가 하나의 대구이며, 둘째는 지은바 ‘선’과 ‘불선’을 아는 것이다. 셋째는 선 가운데서 해탈분(解脫分)의 선을 아는 것을 ‘출세(出世)’라고 이름하며, 해탈분이 아닌 선을 아는 것을 ‘불출세(不出世)’라고 이름한다. 넷째, 해탈분 중에서 정위(定位)를 얻는 것을 ‘정(定)’이라 이름하며, 얻지 못하는 것을 ‘부정(不定)’이라 이름한다. 다섯째, 앞에서 말한 불출세의 선 중에서 종성(種姓)이 있음을 ‘정정취(正定趣)’라고 이름하며, 종성이 없는 것을 ‘사정취(邪定趣)’라 이름한다. 여섯째, 유루의 선에 나아가는 것을 ‘유사(有使)’라 이름하며, 무루를 ‘무사(無使)’라고 이름한다. 일곱째, 무루 중에서 과위(果位)의 선보를 ‘구족(具足)’이라 이름하며, 인위(因位)의 선근을 ‘불구(不具)’라고 이름한다. 위의 일곱 가지는 계위를 기준으로 해서 중생을 아는 것이다. 아래의 셋은 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덟째,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을 ‘선․악을 섭취한다’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아홉째, 닦는 것을 ‘적집(積集)’이라 이름한다. 열째 중에서 ‘악을 적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반드시 선을 닦는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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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스크리트의 복합어를 해석하는 여섯 가지 방법[六合釋] 중의 하나로서 수사한정복합어(數詞限定複合語)이다. 대수석이므로, 10명은 ‘열 가지 명’의 의미이다.

2) 「십명품」․「십인품」․「아승기품」․「수명품」․「보살주처품」.

3)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4) 「여래명호품」을 가리킨다. 「여래명호품」에서 말하는 10자재(自在)는 여기 10명에 해당하는 것이다. 『탐현기』 제4권에서는 “작용이 밝고 자세하므로 10자재와 10명의 두 가지 이름이 다 성립한다”라고 하였다.

5) 『보살본업경』 제1권 앞부분에서 “부처님의 본업은 10지(地)․10지(智)․10행(行)․10투(投)․10장(藏)․10원(願)․10명(明)․10정(定)․10현(現)․10인(印)”이라고 했다.

6) 「십명품」을 해석하는 중에 셋째이다.

7) 멸정은 신통이 아니지만 신통을 일으킬 때에 상응하는 선정이다.

8) 다른 판본에서는 ‘지명(智明)’을 ‘지용(智用)’이라 이름하였다.

9) 노사나(盧舍那)․보현(普賢)의 지혜라는 뜻이다.

10) 60권본 『화엄경』 제38권.

11) 「이세간품」의 열 가지 신통을 가리킨다.

12) 여섯째 지명이다.

13) 여덟째 지명을 가리킨다.

14) 일곱째 ‘모든 언어 소리를 분별하는 지명’을 가리킨다.

15) 아홉째 ‘일체 모든 법의 진실을 아는 지명’과 열째 ‘일체 모든 법의 멸정(滅定)을 아는 지명.’

16) “이러한 3명은 대아라한과 대벽지불이 얻는 바이다.”[『대지도론』 제2권].

17) 아홉째와 열째의 지명.

18) 『열반경』에서는 ‘제불명(諸佛明)’을 ‘불안(佛眼)’이라 하였다.”[『대반열반경』 제16권].

19) 타심지(他心智)와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를 가리킨다.

20)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제3권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내용은 『대지도론』 제2권에 나온다.

21) 상동.

22) 「십명품」을 해석하는 중에 넷째이다.

23) 10명을 10단으로 해석하는 중 첫째이다.

24) 60권본 『화엄경』 제28권.

25) 선심(善心)․불선심(不善心)․무기심(無記心).

26) 개별적인 것 중의 30가지 마음을 둘로 나누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7) 천심․용심․야차심․건달바심․아수라심․가루라심․긴나라심․마후라가심.

28) 10명을 10단으로 해석하는 중 둘째이다.

29) 『대지도론』 제39권 「왕생품(往生品)」.

30) ‘천안통(天眼通)’의 ‘통(通)’은 연문(衍文)인 것 같다.

31) 다른 판본에 따라서 ‘문(問)’을 삽입하여 옮긴다.

32) “소아라한의 작은 용심은 1천세계를 보고 큰 용심은 2천세계를 보며, 대아라한의 작은 용심은 2천세계를 보고 큰 용심은 3천세계를 본다.”[『대지도론』 제5권].

33) 10명을 해석하는 10단 중의 셋째이다.

34) 60권본 『화엄경』 제2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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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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