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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3-10-22 오후 8:3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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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화엄경탐현기 제17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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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중 제 17권
화엄경탐현기 제17권
위국 법장 지음
김호성 번역
33. 이세간품(離世間品)
여기 본문을 해석하는 데 네 가지 문(門)이 있음은 앞과 같다.
첫째,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니 셋이 있다.
첫째, 분명(分名)이다. 이른바 여기서는 셋째1) 탁법진수분(託法進修分)이라 이름한 것을 밝히는 것이니, 곧 행법에 의탁(依託)하여 올바른 행을 닦아서 이루는 것이므로 이러한 이름을 세운다.
둘째, 회명(會名)이다. 장소를 기준으로 하여 보광중회(普光重會)라고 이름한 것이니, 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중회’라고 하는가? 앞2)의 보광은 앎을 내는 처음이요 이제 앎에 의지하여 행을 일으킴을 밝히기 때문에 중회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찌하여 3회∙4회 등의 처소는 또한 중회가 아닌 것인가? 해석하자면 앞은 바로 앎을 낳는 법이라 가히 여러 곳에 부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다만 앞의 법에 의지하여 행을 이루기 때문에 여러 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셋째, 품명(品名)인데, 넷이 있다. 첫째는 아래 본문에 열 가지 뜻[十義]이 있으니 그곳에 이르면 마땅히 분별할 것이다. 둘째는 따로 번역된 하나의 본(本)이 있으니 『도세경(度世經)』3)이라 이름한다. 셋째는 다시 하나의 본이 있으니 『보현보살답난이천경(普賢菩薩答難二千經)4)이라 이름한다. 넷째는 이 품인데 『이세간품』이라 이름하니, 역시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망집(妄執)이 세간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공(空)이 곧 여읨[離]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본문5)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모든 세간은
다 망상에서 생기는 것이네.
이러한 모든 망상법은
그 성품이 있는 것 아닐세.
둘째, 연기를 세간으로 삼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자성이 없기 때문에 여읨이라 이름하니, 위의 본문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3세의 5음법을
세간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허망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
없으면 곧 세간을 벗어난 것이다.
셋째, 행을 기준으로 하면 이른바 언제나 세간에 있으나 세간에 거두어지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여읨’이라 말하는 것이다. 넷째, 지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인천(人天)이 세간이라면 2승은 여읨이 되고, 2승이 세간이 된다면 보살이 여읨이 되며, 보살의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모두 세간이 된다면 불과(佛果)의 구경(究竟)에서 비로소 여읨이 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분별하는 바는 6위(位)7)의 행이기 때문에 인과의 두 가지 지위가 갖추어지면 세간에 즉하면서도 세간이 아니기 때문에 ‘여읨’이라 말하는 것이다. 품(品) 내에서 이를 밝히고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8) 내의(來意)인데, 역시 셋이 있다.
첫째 분래(分來)이다. 위9)에서는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을 밝혔으니 곧 법에 대하여 앎을 일으켰던 것이며, 여기서는 탁법진수행덕분(託法進修行德分)을 밝히는 것이니, 즉 앎에 의지하여 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뜻의 차례이기 때문에 모름지기 그 다음에 오는 것이다.
둘째 회래(會來)이다. 앞의 제6회10)에서는 수인계과생해가 두루 원만함을 밝혔으니, 다음으로 올바른 행은 세간에 처하더라도 염오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온 것이다.
셋째 품래(品來)이다. 앞의 『성기품』에서는 성과(性果)의 뛰어남을 밝혀서 나타내었으며, 여기서는 그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행의 작용을 밝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다음에 오는 것이다.
셋째,11) 종취(宗趣)이니, 둘이 있다. 첫째는 유(類)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둘째는 뜻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둘째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째, 사람에게는 화주(化主)와 조화(助化)가 있으니,12) 화주는 내증(內證)의 행해(行海)로써 체를 삼으며 조화는 정(定)에 들어가서 땅을 진동함으로써 모습을 삼는다. 나머지는 모두 앞13)과 같으니, 이에 준하라. 둘째, 법 중의 가르침[敎事] 내에서는 간략히 2백 가지 물음을 표방함으로써 근본을 삼으며, 널리 2천 가지를 답하는 것으로 모습을 삼고, 찬탄하여 중생을 이익케 함으로써 작용으로 삼는다. 이치[義理] 중에서는 평등한 성해(性海)로써 체를 삼으며, 티끌 수와 같이 많은 행덕(行德)으로 모습을 삼고, 가르침과 더불어 상응함으로써 작용을 삼는다. 나머지 상즉(相卽) 등은 모두 이에 준한다.
둘째, 뜻을 기준으로 한 것에서는 넷이 있다. 첫째는 법이며, 둘째는 행이고, 셋째는 둘다[俱]이며, 넷째는 둘 다 아닌 것[泯]이다.
첫째14) 중에서 둘이 있으니, 첫째는 세간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여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사상(事相)을 기준으로 하면 세간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기세간(器世間)이며, 둘째는 5온세간(蘊世間)이다. 이는 의보와 정보의 입장에서 나눈 것이니, 다른 『논』에서 설한 바와 같다. 둘째,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도 역시 둘이 있으니, 첫째는 유위세간(有爲世間)이며, 둘째는 무위세간(無爲世間)인데, 이들은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변역생사(變易生死)에 근거하여 둘이 된 것이다.15) 변역은 이러한 3유(有)16)에 거두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위라고 이름한다. 『승만경』에서 ‘유위생사(有爲生死)와 무위생사(無爲生死)’라고 한 것이 이러한 뜻이다. 셋째, 염오와 청정을 기준으로 한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기세간이고 둘째는 중생세간이며 셋째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다. 첫째는 의지하는 대상이며, 둘째는 교화의 대상이고, 셋째는 교화하는 주체이니 『지론』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둘째,17) 여읨을 밝히는 데 둘이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 곧 여읨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세간의 여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같지 않으므로 여읨이라 이름하니 마치 지정각세간을 세간이라 이름하지만 세간과 같지 않으므로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서로 대조하여 여읨[相望離]이니, 마치 무위세간을 분단과 대조하여 역시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다. 셋째는 성품 스스로 여읨[性自離]이니 마치 모든 세간은 자성이 없어서 본래 남이 없기[無生] 때문에 역시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다. 『논』18)에서는 “세간과 열반은 조금도 차별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세간이 곧 여읨이 되는 것이다. 둘째19)는 세간을 멀리 벗어나는 것을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 중에도 셋이 있다. 첫째는 같지 않아서 여읨과 서로 대조해서 여읨은 모두 저 세간을 멀리 벗어나므로 여읨이라 하며, 성품 스스로 여의는 이치 역시 세간에 거두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다 세간을 멀리 벗어나는 것을 비로소 여읨이라 한다.
둘째,20) 행을 기준으로 하여 역시 셋이 있다. 첫째는 행이 연(緣)을 좇아서 일어나는 것을 세간이라 하며 자성이 생겨남이 없는 것을 곧 여읨이라 이름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행이 능히 번뇌를 멸하여 세간을 등지도록 하기 때문에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셋째는 행이 묘과(妙果)를 이루어서 두 가지 죽음21)을 영원히 초월하므로 여읨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는 차례대로 앞의 세 가지22) 여읨과 같다. 또한 세 가지 불성(佛性)23) 등과도 같으니, 생각해 보라.
셋째, 둘 다를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는 가운데 세간을 대상으로 삼고 자비와 지혜를 행으로 삼으면 자비 때문에 언제나 세간에서 행하는 것이며, 지혜 때문에 언제나 세간을 떠나는 것이다. 또한 세간과 더불어 성품을 여읨이 둘이 아님을 경계로 삼는 것이며, 자비와 지혜가 둘이 아님을 행으로 삼으면 경계와 행이 통하여 원융하니 역시 세 가지 구절이 있다. 첫째 지혜가 자비롭지 않음이 없으므로 세간이 여읨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언제나 세간에 있으면서도 일찍이 벗어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 자비는 지혜롭지 않음이 없으므로 여읨이 세간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언제나 세간을 초월하면서도 세간에 노닐지 않음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 함께 원융하므로 동정(動靜)이 둘이 아니며 오직 일념(一念)이니 이른바 무념(無念)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무념(無念)이며 염을 일으키지24) 않으므로 언제나 세간에서 행하며 언제나 세간을 벗어남에 장애가 없는 것이다.
넷째, 모두 아닌 것에도 역시 셋이 있다. 첫째 경계를 기준으로 해서 세간과 여읨은 형체를 빼앗겨서 둘 다 없는 것이고, 둘째 자비와 지혜가 모두 원융하여 두 가지 염(念)이 함께 소멸하는 것이며, 셋째는 대상과 행이 서로 말미암아서 형체를 빼앗아서 나란히 없앴으므로 상대를 끊고 언어를 떠났으니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본문의 2천 가지 행상(行相)은 이러한 뜻이니, 생각하여 이에 준하라.
넷째,25) 본문을 해석한다. 이 회(會)는 크게 여덟으로 나눈다. 첫째는 서분(序分)이며, 둘째는 삼매분(三昧分)이다. 셋째는 기분(起分)이고, 넷째는 청분(請分)이다. 다섯째는 설분(說分)이며, 여섯째는 결권분(結勸分)이다. 일곱째는 표증분(表證分)이며, 여덟째는 게송분(偈頌分)이다.
첫째의 서분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기세간의 원만함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지정각세간의 원만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는 중생세간의 원만함을 나타낸다.
첫 번째의 뜻은 앞26)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둘째 중에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成等正覺]’는 등은 수용신(受用身)의 스물한 가지 공덕이니 『섭론』 제5권27)과 『불지론』 제2권에서 모두 자세히 이 글28)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두 가지 『논』을 의지하면서 조금만 약술하기로 한다. 처음의 한 구절은 총(摠)이며, 나머지 스무 구절은 별(別)이다. 처음 가운데 뒤의 스무 가지 뛰어난 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정각(正覺)’이라 이름한 것이니, 곧 올바른 이치에 맞게 깨달음을 여는 것이다. 또한 삿된 장애를 떠난 깨달음이므로 그렇게 이름한다. 또한 ‘정각’은 여리지(如理智)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등각’은 여량지(如量智)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29) 별 중에서 둘째 ‘불이(不二)의 염’이라는 것은 『논』에서는 ‘불이의 현행(現行)’30)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곧 ‘한결같이 장애가 없는 뛰어난 공덕’으로서 두 가지 장애를 떠났으므로 범부와 소승이 두 가지 처소[二處]31)에 머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멀리 시간과 장소[方] 등의 경계에 대하여 알고 모르는 두 가지 염이 없기 때문이니, 곧 이로 말미암기 때문에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한다.32) 셋째, ‘상념(相念)이 없다’는 것은 저 『논』에서는 ‘무상(無相)에 나아간다’고 이름하니 ‘교화방편[調化方便]의 공덕’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열반(無相涅槃)에 나아가 증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둘이 없음에 능히 들어가는 공덕’이라고 이름하니, 이른바 스스로 능히 유무(有無)의 상을 떠난 청정한 진여(眞如)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들어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넷째, ‘부처님께서 머무는 바에 머문다’는 것은 교화되는 대상을 관찰하는 공덕이니, 이른바 대비에 머물러서 언제나 세간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불사(佛事)에 자유자재[任運]하여 쉬지 않는 공덕’이면서도 언제나 성천(聖天) 및 범(梵)이 머무는 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다섯째, ‘모든 부처님과 같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서로 유사한 사업(事業)을 얻는 공덕’이다. 또한 ‘법신 중의 소의(所依)∙의요(意樂)∙작업(作業)의 차별이 없는 공덕’이니, 이른바 의지하는바 지혜33)가 같으며 중생을 이익케 하는 뜻이 같으며 보신과 화신의 업이 같기 때문에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걸림없는 세계[趣]에 이른다’는 것은 ‘다스려야 할 바를 영원히 끊어버리는 공덕’이다. 이른바 두 가지 장애의 습(習)이 멸함을 증득하는 것과 저 다스리는 도를 닦아서 현전함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물러서지 않는 법을 얻는다’는 것은 ‘외도를 절복하는 공덕’이니 이른바 증법(證法)과 교법(敎法)은 그34)가 능히 굴리지[轉] 못하니 그를 절복함으로써 올바른 도의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덟째, ‘걸림없는 경지’라는 것은 ‘악마의 원한을 항복하는 공덕’이니 이른바 역경(逆境)이든 순경(順境)이든 마음을 장애하지 못하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八法]35)이 능히 장애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홉째, ‘부사의(不思議)에 머문다’는 것은 ‘법과 가르침을 안립(安立)하는 공덕’이니, 이른바 모든 뛰어난 가르침이 헤아림[尋思]을 벗어나 있어 다른 사람이 능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열째, ‘3세를 여읜다’는 것은 『논』36)에서 “3세의 평등한 법성(法性)에 노닌다”라고 이름한 것이니, 이는 3세를 기별(記別)하는 공덕이다. 이른바 과거와 미래를 기별하는 것이 모두 현재와 같이 분명하여 전도됨이 없기 때문에 평등이라 이름한다. 이 중에서 ‘여읜다’라는 것은 3세를 떠나는 것이니 기별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한째, ‘모든 세계에 있어서 두루 몸을 나타낸다’는 것은 동시에 모든 세계에 두루한 것이니 ‘수용(受用) 화신(化身)의 공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열두째, ‘모든 법을 안다’는 것을 『논』37)에서는 ‘모든 법에 대하여 지혜로워서 의혹이나 걸림이 없는 것’이라 이름하니 ‘모든 의심을 끊는 공덕’이다. 이른바 모든 법에 대하여 스스로 의혹을 끊고서 결정된 지혜를 얻으며, 다른 사람 역시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열셋째, ‘모든 묘행(妙行)을 구족하여 성취한다’는 것을 『논』38)에서는 ‘모든 행에 있어서 대각(大覺)을 성취한다’라고 이름하니 이것이 바로 ‘갖가지 행에 들어가는 공덕’이다. 이른바 교화할 대상인 유정(有情)의 마땅한 바에 따라 동류(同類)의 몸을 나타내서 그로 하여금 들어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열넷째, ‘영원히 의혹을 멸한다’는 것은 ‘장래의 법에 통달하여 지혜를 낳는 공덕’인데, 이른바 2승(乘)의 경계를 지나는 미세한 선의 씨앗이니, 마치 기와 조각 중에 미세한 금(金)의 종자가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계는 전도됨이 없이 두루 알기 때문이다. 열다섯째, ‘허망한 몸을 떠난다’는 것은 『논』39)에서는 ‘가히 분별할 수 없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자신이 염오가 없는 공덕’이다. 이른바 번뇌∙업∙괴로움과 같은 잡염(雜染)의 분별이 일으키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
1) ‘제3(第三)’은 ‘제4(第四)’의 잘못인 것 같다. 법장의 5분(分) 중에서 탁법진수성행분(託法進修成行分)은 넷째이기 때문이다.
2) 제2회를 가리킨다.
3) 축법호 역,『도세품경(度世品經)』을 가리킨다.
4) 오(吳)대의 실역(失譯)이다.[『화엄경전기』 제1권 참조].
5) 『여래광명각품』 제5[대정장9, p.424 하].
6) 『보살설게품』의 역성취림게(力成就林偈).[대정장9, p.465 중].
7) 10신∙10주∙10행∙10회향∙10지∙구경의 여섯 가지 지위이다.
8) 본문을 해석하는 네 가지 범주 중에서 그 둘째이다.
9) 『여래명호품』 제3에서 『보왕여래성기품』 제32까지를 가리킨다. 현수는 그 부분을 수인계과생해분이라 과분하였기 때문이다.
10) 타화자재천궁회. 『십지품』 제22에서 『보왕여래성기품』 제32까지를 말한다.
11) 본문을 해석하는 네 가지 범주 중에서 그 셋째이다.
12) 화주는 비로자나불이며, 조화는 보현보살이다.[『통유초』, p.457].
13) 『여래명호품』 제3[대정장 9, p.418 중], 『탐현기』 제4권 참조.
14) 법 가운데 둘이 있는 것 중에서 그 첫째이다.
15) 『탐현기』 제1권 참조.
16) 욕유∙색유∙무색유. 이들은 모두 유위이다.[『통유초』, p.478].
17) 법에 둘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18) 『중론』. 『탐현기』 제4권. 진제 역, 『섭대승론석』.
19) 여읨에 둘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20) 뜻의 입장에 넷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21) 분단생사와 변역생사이다.
22) 앞의 세 가지 여읨. 즉 부동리(不同離)∙상망리(相望離)∙성자리(性自離)이다.
23) 자성주불성(自性住佛性)∙인출불성(引出佛性)∙득과불성(得果佛性)이다.
24)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지(智)’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의 갑본에 따라서 ‘지(智)’를 ‘기(起)’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25) 본문을 해석하는 네 가지 범주 중에서 그 넷째이다.
26) 『세간정안품』. 『탐현기』 제1권, 제2권 참조.
27) 무성, 『섭대승론석』 제5권[대정장31, p.409 중∙하]. 진제 역, 『섭대승론석』 제5권[대정장31, p.347 중∙하] 이외에 『해심밀경』 『서품』 제1 역시 21가지 공덕을 설하고 있다.[대정장16, p.688 중].
28) 스물한 가지 공덕을 설하는 글.[대정장9, p.631 중].
29) 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지(知)’ 다음에 ‘별중이불이념자(別中二不二念者)’를 삽입하여 옮긴다.
30) 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행(行)’ 다음에 ‘별중이불이념자’를 생략한다. 불이의 현행은 2행(行)을 떠나는 것인데, 원측의 『해심밀경소』에는 2행에 셋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장애가 있음과 장애가 없음으로써 두 가지 현행으로 삼는 것이고, 둘째는 내∙외의 2처(處)에 지혜가 없음을 두 가지 현행으로 삼는 것이며, 셋째는 생사와 열반에 기꺼이 집착하는 것을 두 가지 행으로 삼는다.”(『韓佛全』1, pp.151하~152상).
31) 범부가 생사에 집착하는 것과 소승이 열반에 집착하는 것이다.
32) 여기의 두 가지 해석 중에서 앞의 해석은 무성의 입장이며, 뒤의 해석은 세친의 입장이다.[『남기록』, p.1097].
33) 후득지이다.[『통유초』, p.479].
34) 외도이다.
35) 8풍(風), 곧 이(利)∙쇠(衰)∙훼(毁)∙예(譽)∙칭(稱)∙기(譏)∙고(苦)∙낙(樂)이다.
36) 무성, 『섭대승론석』 제5권[대정장31, p.410 상].
37) 상동.
38)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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