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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함모초해 해제, 서, 및 상 하권
사아함모초해 해제
『사아함모초』ㆍ『사아함모초경』ㆍ『아함모초해』라고도 한다. 바소발타(婆素跋陀)가 저술하고, 구마라불제(鳩摩羅佛提) 등이 부진(符秦) 건원(建元) 18년(382)에 한역하였다. 첫머리에 서문이 있어서 번역의 사정을 밝히고 있다. “본 서는 아라한 바소발타가 저술한 것이며, 4아함의 정수를 뽑아낸 것으로서, 1부(部) 9품(品) 46엽(葉)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복을 피하고 문장은 간략하고 의미는 풍부해서 실로 경 중에서도 보배라고 할 만하다”고 평하고 있으므로, 실은 이것이 아함을 요약하여 해설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논서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다만 그 소속 부파를 밝히고 있지 않음이 유감이다. 본서는 처음에 외국 사문 인제려(因提麗)라는 사람이 전부국(前部國)에 건너와서 몰래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을 그 나라의 왕인 미제(彌第)가 구해서 진(秦)나라에 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진 건원 18년 임오(壬午) 8월, 동성선사(東省先師)의 절인 묘업사(廟鄴寺)에서 미제왕의 국사인 구마라불제로 하여금 범본을 해석하도록 하고, 불념(佛念)과 불호(佛護)로 하여금 번역하도록 하며, 승도(僧導)ㆍ담구(曇究)ㆍ승예(僧叡)로 하여금 필수토록 하여 11월에 이르러 번역을 완료하였는데, 문제가 있는 부분[懸數懸事]에 대해서는 그 아래에 주(注)를 달도록 하여, 수투로(修妬路)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는 것은, 특히 경본(經本)을 인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말하면 본 서의 작자에 관해서 『삼법론』의 서문1)에서는 산현(山賢)의 저술을 대승 거사 승가(僧伽)가 수정 보완한 것이라고 하는데, 산현이란 세현(世賢, 즉 바소발타)을 오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본 서에서는 동진(東晋)의 구담(瞿曇) 승가제바(僧伽提婆)가 한역한 『삼법도론』이라는 이역(異譯)이 있는데, 본 서에 비해서 문장의 의미가 이해하기 쉽고, 더구나 내용에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가 없으므로 본서를 읽는 데 있어서는 어쨌든 참고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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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혜원(慧遠)이 지은 것으로서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제10권에 수록되어 있다.
사아함모초서(四阿鋡暮抄序)
아함모(阿鋡暮)란 진(秦)나라 말로는 취(趣)가 없다는 뜻이다. 아난(阿難)은 부처님께서 설하셨던 12부경(部經)을 음송하여 출현[出]시켰으며, 또한 그 대요를 채택하고 간추려 곧바로 도법(道法)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사아함모(四阿鋡暮)가 된다. 이를 아비담(阿毘曇) 및 율(律)과 함께 3장(藏)이라 한다.
인도[身獨] 학사(學士)의 지극한 덕성이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바소발타(婆素跋陀)라는 아라한이 사아함모의 기름지고 비옥한 내용만을 간추려 1부(部) 9품(品)으로 구성하였는데, 총 46엽(葉)이다. 중복되는 부분은 배제하고 복잡다단한 문장은 간단하게 줄여 뜻을 풍부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경(經)의 영만(瓔鬘:영락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온갖 행이 미묘하니, 옳고 그름을 가려서 다 싣지 않은 바가 없다. 뛰어나고 오묘하고 깊고 풍부한 행을 할 수 있는 대로 다해 마친 것이다.
인제려(因提麗)라는 외국의 사문이 먼저 앞의 부(部)를 가지고 들어와 비밀리에 지니고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 나라 왕 미제(彌第)가 그것을 얻어 읊조리자 비로소 나라 안에 유포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임오(壬午)년 8월에 업(鄴:하남성 안양현 북쪽의 지명)에 있는 절인 동성(東省)의 선사사(先師寺)에서 구마라불제(鳩摩羅佛提)로 하여금 범본을 집수(執手)하게 하고, 축불념(竺佛念)과 축불호(竺佛護)에게 번역토록 하였으며, 승도(僧導)와 담구(曇究), 그리고 승예(僧叡)로 하여금 받아 적게 하였다. 그리하여 겨울인 11월에 마쳤다. 이 해의 여름에는 아비담을 출현시켰고 겨울에 이 경을 출현시켰으니, 1년 동안에 3장을 갖춘 셈이다. 스스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은, 다만 이 경을 처음 만난 지 8ㆍ9년이 경과한 것이 한스럽고 책을 맨 끈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채 그 일을 다 마치지 못할까 염려스러웠으나 몇 년을 더하였더라도 큰 허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근자에 칙령을 내려 번역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범어를 진나라 말로 전환하도록 하고 방언을 해석하도록 했다. 이 경의 문장의 질이 감히 번역하기가 쉽지 않고 그 법수(法數) 또한 번거로워서 그 일을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탐색하는 사람들이 그 아래에 주(註)를 달았고, 때때로 다시 그 뜻을 얻은 이들이 그 문장에 주를 달았다. 수투로(修妬路)는 어떤 사람이 주해(注解)하는 데 인용한 경본이다. 이 경에서 곧바로 수투로라고 한 말은 경을 인용하여 증명한 부분이지, 주해는 아니다.
사아함모초해(四阿鋡暮抄解)
사아함모초해 상권
바소발타(婆素跋陁) 지음
부진(符秦) 구마라불제(鳩滅佛提) 등 한역
김 철수 번역
1. 사아함모초해(四阿鋡暮抄解) [이 땅에서는 경전의 수미(首尾)를 완결할 때 앞머리에 있는 품으로 제목을 삼기 때문에 도안(道安)이 이것으로 책의 제목을 붙인 것이다.]
아함모(阿含暮)[진(秦)나라 말로는 취(趣)가 없다는 뜻이다].
먼저 선서(善逝)와 법중(法衆)과 괴유중(壞有衆)에게 귀명의 예를 드린다[존경스러운 3존중(尊衆)에게 예를 드리면 번뇌의 결박을 제거할 수 있다]. 법을 설하는 데는 간략하고 신속하게 그 의미를 밝혀서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3법(法)의 형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제자가 물었다.
[문] 여기에 3법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3법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답] 법은 세 가지 문[三門]에 의지하여[면(面)하다, 향(向)하다는 뜻이다] 결구(結句)한다. 이는 순서대로 지었기 때문에 3법의 상(想)을 분간할 수 있다.
[문] 3법의 순서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답] 대불경(大佛經)의 장구(章句)에는 무수한 상(相)이 연계되어 있으니, 가령 음(婬)과 에(恚)를 마음속에 품는다거나, 정진(精進)의 인연을 간직하여 맛보는 것이다[탐음하고 성냄에 집착하거나 정진하는 행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닌다거나 맛을 본다고 말한다]. 지혜가 적은 중생이 성스러운 진리를 구하려면, 갖가지 상(想)의 뜻을 잘 알아야 하고 신속하게 3법의 방편상(方便想)을 알아야만 한다. 이 3법의 방편상의 순서에 따라 일체 세간의 모든 상(想)을 분별하면, 바라는 바대로 상(想) 등을 원만하게 간추려 정리해낼 수 있다. 따라서 3법을 지은 취지를 헤아려 알 수 있다.
[문] 이 방편상은 3법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 공덕(功德)ㆍ악(惡)ㆍ의(依)를 깨우쳐 해탈함이다[수투로(修妬路) 3법은 공덕이 첫 번째이고, 악이 두 번째이며, 의가 세 번째이다]. 공덕ㆍ악ㆍ의를 깨달아 해탈에 이른다는 문구의 뜻이 있으니, 이 근본 문구에는 3법의 의미가 담겨 있고 각각의 3도(度)는 세 가지로 분류된다.
[문] 세 가지로 분류되는 문구에서 최초로 해탈에 대해 생각하시어 설하셨는데, 해탈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저 해탈이란 공덕ㆍ악ㆍ의에 대한 깨달음과 상응하는 것인지요?
[답] 이미 깨달아 들어갔으면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해탈은 세간 등에서 생(生)하니 벌레나 개미에 이르기까지 즐거움[樂]을 구한다. 이는 식(食)을 보면서 해탈에 취향[趣]해 가는 것이니 낙통(樂痛)과 한뜻이다. 세간의 적은 즐거움이 상응하는 즐거움의 인연이니 여여한 즐거움, 도(道)의 즐거움, 열반의 즐거움, 무병(無病) 등이 생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도의 즐거움에는 이것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으니, 만약에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도에 깨달아 들어갔으면 말할 필요가 없으니, 비유하면 어린아이와 같다.
[문] 누구라서 눈[眼]에 대해 스스로 눈의 처소를 알 수 있습니까?
[답] 스스로 아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세간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것이 도(道)가 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도(道)의 뜻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문] 어떻게 공덕을 깨달아 즐거운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러하다면 금을 보면 부자가 되고 약을 보면 병이 낫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입니다. 따라서 깨달아 해탈할 수 없습니다.
[답] 이 가운데 비유하면 가령 밝은 등불이 어둠을 비추어 들어가 어둠을 무너뜨릴 때 등불이 비춘 후에는 어둠이 있지 않듯이, 지혜가 생하는 해탈이라는 것도 지혜와 깨달음이 한뜻이다.
[문] 공덕이란 어떤 법을 말합니까? 중생의 깊은 어리석음을 말합니까, 아니면 색(色)ㆍ미(味)ㆍ향(香)을 말합니까, 혹은 수(受)ㆍ불수(不受)ㆍ이수(已受)를 말합니까?
[답] 상(想)을 따르는 것 이외에 경에서는 공덕이란 복덕(福德)ㆍ근(根)ㆍ무악(無惡)이라 한다고 하였다.[수투로. 세 구(句)는 복ㆍ근ㆍ무악이다] 복덕ㆍ근ㆍ무악 이 세 가지가 공덕의 청정법과(淸淨法果)이다. 내가 공덕상(功德想)의 모든 것들을 다 세 가지로 귀납시켜 이렇게 간추려 설한 것이다.
[문] 복덕ㆍ근ㆍ무악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복덕(福德)은 어떤 법입니까?
[답] 복덕이란 보시(布施)ㆍ계(戒)ㆍ분별(分別)이다[수투로]. 자주자주 선한 일을 하고[자주자주란 항상함이다], 악한 일을 자주자주 억새를 베듯 하므로 복이라 한다[억새는 갈대와 같다]. 이 세 가지 보시ㆍ계ㆍ분별을 행하는 것에 관해 선사(先師:옛 성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항상 복덕을 지어 보시를 행하라[여덟 자].1)
중생의 명(命)은 그 수명이 신속하게 내달린다[여덟 자].
갈대를 베어버리듯 악을 소제하는 행을 자주 해야 하나니[여덟 자]
그러므로 복덕을 이와 같은 비유로 설하네[여덟 자. 수로(首盧)라 이름한다. 수로는 32자로 구성된 게송(偈頌)이다].
[문] 이미 복덕의 보시ㆍ계ㆍ분별을 말씀하셨는데, 보시(布施)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답] 보시하는 자신과 보시를 받는 다른 사람과 보시하는 재물이 있으니, 보시하고자 하는 생각[念]이 나면 다시 보시를 행한다.
세 가지 보시행(布施行)에는 법시(法施)와 식시(食施)와 무외시(無畏施)가 있다[수투로]. 법시ㆍ식시ㆍ무외시 이 세 가지를 보시라 말할 수 있다.
법시(法施)는 세간ㆍ출세간의 문장이나 말씀이며, 무외시란 8행(行)ㆍ3귀명거(歸命去)ㆍ5계(戒)이다.
세존께서는 부처님께 귀명(歸命)할 것을 설하셔서 한량없는 중생이 두려움이 없고 질투가 없고 성냄이 없고 살생이 없도록 하셨다. 나머지도 이와 같다.
[문] 만약에 귀명을 했는데 곤충을 죽이는 일을 보게 된다면, 어떤 무외(無畏)의 법이 보호합니까?
[답] 나는 일체 중생이 삿된 견해와 어리석음으로 곤충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악을 짓는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3귀명(歸命)을 지으면 세간 등의 일을 보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귀명하는 일이 없다면 세간 등의 견해가 있게 되니, 이는 귀명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무외시(無畏施)는 한량없이 길상하다.
식시(食施)는 음식을 보시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니, 온갖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탑을 보시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거나[갖가지 상(象)], 향을 올리는[갖가지 공양] 것을 으뜸으로 삼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받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받는다. 따라서 두 가지 공덕이 큰 과보(果報)를 구족하니, 이것이 깨끗하게 베푼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선사(先師)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근본적으로 재물에는 짓는 일이 있고
생각이나 재물, 두 가지에는 짓는 일이 있으며
뜻이 세간의 길상함을 지으니
이는 방편의 깨끗함이로다.
조금만 베풀어도 큰 과보 있으니
인연의 깨끗함이 있으면
적은 것으로도 큰 공덕 이룰 수 있네.
[문] 계란 어떤 법입니까?
[답] 계는 신(身)ㆍ구(口)의 타수(他受), 불괴타(不壞他), 괴증(壞增)이다[수투로]. 계란 이 세 가지가 신(身)과 구(口)에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문] 어떤 법입니까?
[답] 타수(他受)와 타불수(他不受)와 증(增)이다.
타수(他受)란 배고프고 결핍되었을 때 스스로 다른 사람의 향수함[他受]에 폐를 끼치지 않고 중생 자신이 스스로 다른 중생에게 폐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이해하여 죽이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다른 사람의 부인을 물든 마음으로 취하지 않는 것과 같다[비록 여기서는 수(受)라고 말하고 있으나 또한 불수(不受)이기도 하다. 곧바로 분류하면 신(身)ㆍ구(口)의 불수이다]].
불타수(不他受)란 거짓말ㆍ이간질하는 말ㆍ거친 말ㆍ경우에 맞지 않는 말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니, 일곱 가지 항목으로 다른 사람에게 패를 끼치지 않는 것과 같다. 온갖 빈궁함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타수와 불타수 두 가지를 함께 하는 마음으로 힘써 도우면 복의 증장함이 계속되니, 이로부터 살생할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러는 가운데 복의 증대함이 상응하니, 가령 재산을 내어서 보은할 마음을 일으키고 착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비유하면 곡식 종자가 자라나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타수와 불타수의 증익이 계속되면 수면의 상태에서도 증대되므로 증(增)은 계(戒)이다[꿈에서도 잃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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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덟 자라고 한 것은 한문 게송의 글자 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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