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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중 제 2권
화엄경탐현기 제2권
위국 법장 한역
노혜남 번역
1. 세간정안품 ②
열 번째로 문장을 따라서 해석한다는 것은 이제 이 3만 6천 게송으로 이루어진 경에 7처(處) 8회(會)가 있다. 이를테면 사람 가운데 세 곳과 천상의 네 곳을 7처로 하고 중회(重會)의 보광(普光)을 8회로 한다. 그 가운데 34품이 있다.
처음의 한 품은 서분(序分)이다.
「노사나품」에서부터 그 아래는 정종(正宗)을 밝혔다.
유통(流通)의 유무(有無)는 네 가지 뜻[四義]으로써 해석한다.
첫째 ‘중생심 미진’ 이하의 두 게송으로써 유통을 삼으니 결탄권신(結歎勸信)하기 때문이다.
둘째 경이 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궐(闕)하여 유통이 없다.
셋째 이 경은 법계에 꼭 맞는 법문의 설이기 때문에 총괄적으로 유통이 없다.
[문]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서분이 있는가?
[답]보고 들음이 있으면 통하여 나아가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이 있으므로 서(序)라 하고, 들어갈 곳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유통은 없다. 닦아야만 생기는 불과(佛果)에는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8회 가운데 하나하나의 모임[會]마다 끝에는 모두 유통이 없는가? 『대반야경』의 16회(會) 가운데는 저 회회(會會)의 마지막에 모두 별도로 유통이 있고, 『대집경』의 모든 회(會)의 끝에도 또한 모두 이것이 있는데 이 경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별의(別意)에 의해서 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는 나머지 삼승법 등은 근기[機]의 차이에 따라 중생을 이익되게 함으로써 유통의 모습[相]을 삼는다.
또 대원(大遠) 법사는 이 경을 4분(分)으로 나누었다. 초품을 연기정기분(緣起淨機分)이라고 하고, 두 번째 「사나품(舍那品)」을 표종책지분(標宗策志分)이라고 하며, 세 번째 「명호품(名號品)」으로부터 아래로 제8회에 이르기까지를 현도책수분(顯道策修分)이라고 하고, 네 번째 끝에 보현이 설한 게송을 촉루유통분(囑累流通分)이라고 했다.
이제 다시 아래의 문장을 살펴보면, 총괄적으로 길게 나누어 다섯으로 만들 수 있다.
초품은 교기인연분(敎起因緣分)이다. 두 번째 「사나품」 가운데 일주(一周)의 문답을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이라고 하며, 세 번째 제2회로부터 제6회에 이르기까지 일주의 문답을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이라고 한다. 네 번째 제7회 가운데 일주의 문답을 탁법진수성행분(託法進修成行分)이라고 하며, 다섯 번째 제8회 가운데 일주의 문답을 의인입증성덕분(依人入證成德分)이라고 한다.
유통의 유무는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이 5분(分)은 모두 앞의 것을 의지하여 뒤를 일으키니, 문(文)이 차례로 서로 일어나서 의리(義理)가 두루 만족하다. 이러한 까닭에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처음 서분의 가운데로 나아가서 둘로 나누니, 처음은 이 땅[此土]에서 서분을 밝히고, 다음은 시방의 다함 없는 세계에서 서분을 밝힌다.
처음 가운데 셋이 있으니, 맨 앞의 네 자1)는 오직 증신(證信)이고 둘째 둘째 ‘일시(一時)’의 아래는 2서(序)2)와 통한다. 셋째 ‘동지(動地)’ 아래는오직 발기(發起)일 뿐이다.
만약 뒤의 설에 통하면 4구(句)가 있는 것을 얻는다. 또한 오직 증신이니 이것은 곧 처음이요, 혹은 오직 발기이니 이것은 곧 뒤이다. 혹은 함께함이니 이것은 중간이요, 혹은 구비(俱非)니 아래의 정종(正宗)을 말한다.
또 처음 네 자는 뜻은 통하나 문(文)은 국한되었으니 문은 첫머리에 있지만 뜻은 8회를 통하기 때문이다. ‘일시(一時)’ 아래는 문은 통하지만 뜻은 국한되어 있다. 이하의 모든 회[諸會]에 다 ‘이시(爾時)’ 등이 있기 때문에 문은 통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처음에만 국한되어 있으므로 뜻도 국한된다. 또 『불지론』에 의하면 다섯으로 나누니, 첫째 총체적으로 ‘나는 들었다’는 것으로 나타냈고, 둘째는 교(敎)를 일으킨 시간이며, 셋째는 교의 주체를 나타내고, 넷째는 교를 일으킨 곳이요, 다섯째는 교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근기이다. 『법화론』 등에 의하면 6성취(成就)가 있다. 첫째는 신(信)이요 둘째는 문(聞)이며, 셋째는 시(時)요 넷째는 주(主)며, 다섯째는 처(處)요, 여섯째는 중(衆)이다.
이제 이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네 가지 문으로 만들겠다. 첫째는 이 여섯 가지 뜻이 안립(安立)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 둘째는 친히 전한 말씀을 들은 것에 대하여 밝히며, 셋째는 전법(傳法)할 사람을 결정하고, 넷째는 문장을 해석한다.
첫 번째 가운데 여섯 구[六句]를 세운 데에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부처님이 가르침을 안립하게 함이다. 『지론』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를 임하여 아난(阿難)에게 이르시되 “12부(部)의 경전을 너는 마땅히 유통해야 한다”라고 하시고, 또 우바리(優婆離)에게 이르시되 “일체의 계율은 네가 마땅히 수지(受持)하라”고 하셨다. 또 아나율(阿那律)에게 이르시되 “너는 천안(天眼)을 얻었으니 항상 사리를 수호하고 사람들에게 권하여 공양하게 하라”고 하시고, 대중에게 이르시되 “내가 만약 1겁(劫)을 더 머무르거나 1겁을 감하더라도 마침내 또한 마땅히 멸하리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시자 쌍림(雙林)에서 북으로 머리를 두고 누우셔서 열반에 들려고 하셨다. 아난은 친족의 사랑을 아직도 끊지 못하여 마음이 깊은 수심에 빠졌다. 아니로두(阿泥盧豆)가 아난에게 말했다.
“세존께서 오늘 비록 계신다 하더라도 내일에는 이미 없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미래의 요긴한 일을 물어서 결정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저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이와 같이 민절(悶絶)하는가.”
아난은 곧바로 일어나서 여쭈어 말하기를 “제가 지금 어떤 일을 청하여 물을까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노두(盧豆)가 가르쳐 말하되 “요긴한 일이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친히 스스로 설법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믿고 받았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 마땅히 무슨 말을 둘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며, 둘째 ‘여래께서 계실 때는 모든 비구 등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았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누구로써 스승을 삼아야 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며, 셋째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에 의지해서 머물렀지만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누구를 의지해서 머물러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며, 넷째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성질이 포악한 차익(車匿)도 부처님께서 스스로 이를 다스렸지만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아난이 가르친 대로 청하여 물었다. 세존께서 답하여 이르시되 “경전의 첫머리에는 마땅히 여시(如是) 등 여섯 구절을 두어야 한다”고 하시고, 두 번째로 이르시되 “비구들은 모두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로써 스승을 삼아야 한다”고 하시며, 세 번째로 이르시되 “모두 4념처(念處)에 의지해서 머무르라”고 하시고, 네 번째로 이르시되 “악한 성품을 가진 비구는 범단(梵檀)으로 다스리라”고 하시니, 범단은 여기 말로는 이빈(哩擯)3)이다. 만약 마음을 조복받고자 하면 『가전연경(迦旃延經)』을 설하라. 여기 말로는 『이유무경(離有無經)』이라고 하나니, 아만심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또 『대비경(大悲經)』에서와 같다.
아난은 부처님에게 청하였다.
“어떻게 법안(法眼)을 결집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한 뒤에 대덕 비구는 마땅히 ‘세존은 어디[何處]에서 대아바타나(大阿波陀那) 등의 경을 설하셨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보리수 아래에 계실 때에[如是我聞 一時佛 在摩伽陀國菩提樹下]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신 후 설법하시고 나아가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설법하셨다.’”
이와 같은 등의 20여 곳에서 설하신 경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거듭 아난에게 가르쳐 결집하게 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이 6구(句)는 부처님이 가르침으로 정립한 것이다.
둘째, 의심을 끊기 위한 까닭으로 이 6구를 두었으니, 진제(眞諦) 삼장의 말과 같다.
『미세율(微細律)』에 의하면, “아난이 높은 자리에 올라서 법장(法臧)을 결집할 때를 당해서 그 몸은 부처와 같이 상호를 갖추고, 자리로부터 내려올 때는 도로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였다. 대중은 이러한 상서로움을 보고 마침내4) 세 가지 의심을 내었다. 첫 번째 의심은 부처님께서는 대사(大師)의 자비로써 열반으로부터 일어나서 다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실 것인가, 두 번째 의심은 부처님께서는 다른 곳[他方]으로부터 오셨는가, 세 번째 의심은 아난은 몸이 변하여 부처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라고 한다. 지금 이 세 가지 의심을 제거하기 위한 까닭으로 여섯 구를 두었다. 이러한 까닭에 아난은 스스로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알라. 이것은 부처님이 다시 일어나서 설한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곳의 부처님께서 오신 것도 아니며, 또한 아난 자신이 부처가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법력으로써 나로 하여금 부처님을 닮게 한 까닭이다.
셋째, 미래 세상에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지론』에 이르되 “모든 경의 첫머리에 시(時)ㆍ방(方)ㆍ인(人) 등을 둔 것은 신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넷째, 증감(增減)의 과실을 여의기 위한 때문이다. 『불지론(佛地論)』에 이르되 “마땅히 알라. 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을 설하신 뜻은 증감이분(增減異分)의 과실을 피하려 함이니,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으로서 다른 데로부터 옮겨와서 나타내 보인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은 여러 중생들이 들은 것을 감당할 수 있으므로 모두 증감이분의 과실을 여의게 되나니,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중생들이 들은 것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혹은 증감이분을 여읠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법을 결집할 때 불교를 전하는 자가 여래의 가르침에 의하여 처음에 이 말을 설한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믿어 받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은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고, 문(文)과 의(義)는 결정코 보태거나 줄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듣는 자는 마땅히 바르게 들어서 이치에 맞게 사유하고 마땅히 닦고 배우기를 권장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모든 쟁론을 쉬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만약 스스로 제작(制作)할 때는 곧 쟁론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론』에 의하여 밝혔다.
여섯째, 외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저 외도의 경론에는 “절벽이 무너졌다”고 말하고, 혹은 “청작(靑雀)이 물고 왔다”라고 말하였으나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갖추어 위곡(委曲)을 드러내어 법은 거짓됨이 없음을 밝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
둘째 아난 등의 직접 들은 것[親聞]과 전해들은 것[傳聞]이 같지 않음을 밝힌다는 것은 만약 소승에 의하면 두 가지 설이 있으니, 하나는 아난은 이미 부처님이 득도하신 날 밤에 태어나서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므로 20년 이후의 경은 곧 직접 들은 것이지만 그 이전은 전해들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법륜경(轉法輪經)』에 이르되 “아난은 결집할 때 스스로 게송을 설하여 말하되 부처님이 처음 법을 설하실 때 나는 듣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듣게 되었다. 부처님이 바라내(波羅奈)에 계시면서 다섯 비구들을 위해 4제(諦)의 법륜을 굴렸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그 이전의 것은 직접 들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이르되 모두가 곧 직접 들은 것이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 이르기를 “아난이 부처님을 위하여 시자가 되려 할 때 청원하여 말하기를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20년 동안 설하신 경을 모두 다 저를 위하여 다시 설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는데, 『비니모론(毘尼母論)』에도 또한 이와 같은 설이 있다. 그러므로 총괄적으로 이것은 직접 들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대승에 의하면 일체가 다 직접 들은 것이다.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께서 거듭 설하심이니, 『승만경(勝鬘經)』 등에 부처님께서 본처에 돌아오셔서 거듭 아난을 위하여 설하신 것과 같다. 또 위의 『대비경』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거듭 설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는 곧 직접 들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난이 항상 들었기 때문이다. 『열반경(涅槃經)』에 이르되 “아난 다문(多聞)의 사(士)는 만약 있었거나 있지 않았었거나 간에 저절로 능히 상(常)과 무상(無常)의 뜻을 알았다”라고 하며, 또 이르되 “아난은 각의삼매(覺意三昧)를 얻어서 부처님이 설하신 경의 가깝고 먼 것을 항상 들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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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네 자란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네 글자이다.
2) 2서(序)란 증신서(證信序)와 발기서(發起序)를 말한다. 증신서란 경전의 내용이 부처님의 친설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발기서는 그 경전이 설하여지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이다.
3) 신수대장경에는 ‘묵빈(黙擯)’으로 되어 있다.
4) 고려대장경에는 ‘수(遂)’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환(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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