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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탐현기 제3권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23 조회 : 2513
화엄경탐현기 제 3권.hwp (141.3K), Down : 57, 2009-01-13 11: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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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 2003-10-22 오후 8:23:00]
제 목 :
화엄경탐현기 제3권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중 제 3권

화엄경탐현기 제3권

위국 법장 한역

노혜남 번역

2.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

   

아래에서는 정종(正宗)을 밝힌다.

장차 이 경문을 해석하려 함에 네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이름을 해석함[釋名]이요, 둘째는 온 뜻[來意]이요, 셋째는 종취(宗趣)요, 넷째는 본문을 해석함[釋文]이다.

처음 이름을 해석하는 가운데 ‘노사나’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번역으로, 혹은 3업이 원만하다고 말하고, 혹은 깨끗함이 원만하다고 말하며, 혹은 넓고 넓으며 엄숙하고 청정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다시 범본을 견주어 보니 갖추어 말하면 비로사나(毘盧舍那)이다. ‘노사나’라고 하는 것은 여기 말로 번역하면 ‘광명조(光明照)’라고 한다. ‘비(毗)’라는 것은 여기 말로는 ‘변(遍)’이라고 하니, 이는 곧 광명 변조를 말한다. 이 가운데 광명에 대하여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의 광명[智光]이요, 다른 하나는 몸의 광명[身光]이다. 지혜의 광명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법을 비춤이니 이른바 진속(眞俗)을 모두 비추는 것이요, 또 하나는 기(機)를 비추는 것이니 말하자면 널리 중생[群品]에 응해 주는 것이다. 몸의 광명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항상 빛남[常光]이니 이를테면 원만하게 밝아서 걸림이 없는 것[圓明無礙]이요, 다른 하나는 광명을 뿜어내는 것[放光]이니 말하자면 빛으로써 놀라 깨닫게 함이다. 이 가운데 ‘변’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평만(平漫)의 변이니 걸림 없이 널리 두루하기[無礙普周]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중중의 변으로서 제석의 그물과 같이 거듭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원융하여 각각 전체에 두루함이요, 이 부분에 두루한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불신(佛身)은 모든 법계에 충만하여 널리 일체 중생의 앞에 나타난다”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한량이 없으며 경문에 설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몸과 지혜가 걸림이 없기 때문에 몸의 광명은 곧 지혜의 광명[身光卽智光]이다. 두 번째 변은 걸림이 없으므로 평변이 곧 중중[平遍卽重重]이다. 광명과 두루함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광명이 곧 변조이다. 두루 비추는 성품이 깨달음을 열게 한다. 이런 까닭에 이름하여 ‘불(佛)’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래 경문에서 세계해 등의 모든 일 하나하나가 모두 성품에 칭합하여 연기무애(緣起無礙)하여 어둠을 여의고 각조(覺照)함을 ‘광명[光]’이라고 칭하고, 법계에 널리 두루하지 못함이 없는 것을 ‘변’이라고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나불은 보신(報身)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器) 등의 3종세간에 통하여 10신(身)을 갖추기 때문이다.

[문] 아래 경문에서 간략하게 5해(海)를 밝히고 널리 세계를 분별했거늘 무엇 때문에 「세계품」이라고 말하지 않고 곧 부처님의 이름으로 제목했는가?

[답]고덕의 해석에 이르기를 “주(主)된 것을 따라서 이름했기 때문이다. 주가 뛰어난 까닭에 국토의 주인을 들어서 이것을 설하였다”라고 하니, 여기서 해석하건대 부처님은 3세간에 통하기 때문이다. 아래 경문에서의 국토 등은 곧 사나불이니, 10신 가운데 국토신(國土身) 등과 같다. 또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는 까닭에 표(標)와 석(釋)이 서로 들어서 경문을 꾸민 것이다. 또 5해(海) 가운데 불해(佛海)는 나머지 4해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이 뛰어난 까닭에 홀로 표하여 궤(軌)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렇게 이름하였고 나머지는 설하지 않았다.

둘째 온 뜻이란 것은 앞에서 이미 서(序)를 마침으로써 다음에 정종을 나타낸 것은 뜻의 차례이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셋째 종취란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둘째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에도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또 하나는 교화를 돕는 자[助化]이다. 각각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으니, 주(主) 가운데 내증(內證)의 법지(法智)를 체로 삼고, 7일 동안 사유하여 해탈함을 상으로 삼고, 설(說)을 보탬을 용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이 하나의 과[一果]일 뿐이다. 조화(助化)에서는 선정에 드는 것을 체로 삼고, 가피를 입는 것을 상으로 삼고, 설(說)을 일으키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의 인[一因]일 뿐이다. 이 위는 ‘인’과 ‘과’가 융섭하여 둘이 아니요, 오직 이 하나의 인(人)뿐이다.

법에도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의리(義理)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교리의 일[敎事]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한 각각 체․상․용이 있다. 의리 가운데는 성해(性海)를 체로 삼고, 별덕(別德)을 상으로 삼고, 교리에 응하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의 의리일 뿐이다. 교리의 일 가운데 본분(本分) 안에서는 5해10지(五海十智)를 체로 삼고, 10세계와 화장세계를 상으로 삼고, 기(機)를 이익되게 하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셋은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교리의 일이 된다. 이 위의 교와 의는 융섭하여 둘이 아닌 것을 하나의 법이라고 한다.

또 위의 인과 법이 다시 원융하여 둘이 아닌 것을 하나의 종취라고 한다. 이 4의(義)1)가 각각 셋2)이란 것은 첫째는 하나의 연기가 되어서 상즉하여 걸림이 없다. 이런 까닭에 혹은 오직 과(果)뿐이니, 모두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며, 혹은 오직 인(因)뿐이니 모두가 곧 보현이기 때문이다. 혹은 교(敎), 혹은 의(義), 혹은 인(人), 혹은 법(法), 혹은 체(體), 혹은 용(用), 혹은 주(主)의 체, 나아가 혹은 교의 용으로서 이 모두를 다 섭수하여 다하는 것임을 준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래 여러 모임[諸會]의 종(宗)에도 모두 이러한 상(相)이 있다. 다만 법에 따라서 다를 뿐이다.

넷째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론 해석의 분제(分齊)와 생해(生解)의 방편을 통틀어 분별한[通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따로 본문을 해석한 것이다.

앞의 것에는 대략 열 가지 방편이 있으니, 첫째는 해석결택(解釋決擇)이요, 둘째는 석문방궤(釋文方軌)요, 셋째는 4종실단(種悉檀)이요, 넷째는 4의취(意趣)요, 다섯째는 4비밀(秘密)이요, 여섯째는 4도리(道理)요, 일곱째는 5력(力)이요, 여덟째는 6상(相)이요, 아홉째는 6석(釋)이요, 열째는 8성(聲)이다.

주)-------------------------------------------------------------

1) 4의(意)란 사람 가운데 과와 인과, 법 가운데 의리와 교사를 말한다.

2) 셋이란 체ㆍ상ㆍ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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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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