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大乘六情懺悔 >
釋元曉撰
若依法界始遊行者 於四威儀無一唐遊 念諸佛不思議德 常思實相杇銷業障 普爲六道無邊衆生 歸命十方無量諸佛
1>
<解釋>
만약 法界을 의지하여 두루 겪으면서 수행하려고 하는 者라면 行住坐臥 어느 것에도 헛되이 유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덕을 항상 잊지 말고 알아차리며, 항상 실상을 생각하여 업장을 녹이며, 두루 六道의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시방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야 한다.
(講說)
법계를 의지한다는 것은 적어도 깨달아야만 법계를 의지할 수 있다. 중생교화와 상구보리를 말한다.
法界란 무엇인가? 만일 여러분이 詩人이라면 여러분은 이 손바닥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볼 것이다. 구름이 없이 비가 없으며, 비 없이 마시는 물을 구할 수가 없다. 물이 없다면 이 손바닥 속의 血液이 강물이 흐르듯이 흐르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의 血液과 흐르는 구름과 分離되어 있지 않듯이 森羅萬象의 온 우주가 이 손바닥과 한 번도 분리되어 따로따로 되어 본적이 없다. 만일 분리되어 있다면 현재 이순간의 손바닥은 사라져서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손바닥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손바닥에 흐르고 있는 물이 否定될 때는 온갖 물이 부정하는 것이요, 물이 부정되면 구름이 부정되고, 이 구름에 의한 비와 그것에 의지하여 자라는 나무를 부정하게 되고 나무는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는데 나무가 부정되므로 우리는 결국 생존할 수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은 온 세상에 생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한 번도 분리되어 본적이 없는 緣起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손바닥 안을 더욱더 깊이 들어다 보면 그 안에 있는 한 방울의 血液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구름, 나무, 햇빛, 산소, 땅 등등이 그물과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重重無盡의 宇宙法界가 손바닥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法性偈는 一中一切 多中一라고 說하는 것이다. 雪岑은 이 偈頌에 이렇게 말한다.
所以는 自性을 지키지 아니하여 緣을 따라 이루기 때문이니 一法이 自性
이 없기 때문에 一切를 갖추어 一을 이루는 것이요 一切法이 自性이 없
기 때문에 一法으로써 一切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一 가운데
一切이어서 多가 一에 걸리지 않고 一切 가운데 一이어서 一이 多에 걸
리지 않는다. 이러한 즉 터럭 끝에 三世諸佛이 곳곳에서 衆生을 濟度하며
가없는 刹海에 一切衆生이 낱낱이 涅槃하거니와 터럭 끝이든 刹海이든
` 空花 가운데의 境界요 諸佛이든 衆生이든 夢幻 가운데의 物色이다. 譬喩
하자면 虛空이 비록 一切에 두루 하되 또한 一塵을 여의지 않음과 같으니
虛空이 建立하는 바의 消息을 알고자 하는가.
「처마에 기대인 山色은 구름에 이어져 푸르르고 난간을 벗어난 꽃가지는
이슬을 둘러 향기롭다.」 (大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
이것이 그대로 제석궁전의 寶網과 같다. 제석천의 궁전을 莊嚴하는 網은 각각 코마다 寶珠가 붙어서 각각의 코에 달린 보주는 다른 一切의 보주의 그림자를 비치고 그 하나하나의 그림자 속에 다른 일체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처럼 무한히 交錯되어 反映되고 있다. 말하자면 帝網을 비유로서, 모든 존재는 個體와 全體가 거듭 거듭 다함이 없이 서로 서로가 융합하고 서로 간에 緣이 되어 현상계가 유지됨을 말한다. 그대로 법계의 성품을 말한다. 이것이 華嚴經夜摩天宮偈讚品에 覺林菩薩이 第10 偈頌 응당 法界의 성품 위에라고 한 것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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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http://wonhyo.buddhis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