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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장엄론(송광사강주지운)
글쓴이 : 백련사 날짜 : 2009-01-13 (화) 11:11 조회 : 2683
이 름 :
관리자 [등록일 : 2003-10-09 오후 9:56:00]
제 목 :
현관장엄론(송광사강주지운)
송광사 강주 지운 스님의 현관장엄론 입니다.


<수행의 다섯단계>---마음을 관찰할 때 다음 다섯 과정을 지나게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나기 전에 반드시 계율을 잘 배워지켜야 한다. 계율이 기준이 되고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素養이 갖추어져 있어야 번뇌를 끊어 평정한 생활을 활 수 있다.

1>자기의 마음을 본다.
일반사람들는 상식과 법율로서 善惡을 판단한다. 그러나 출가수행자는 그것을 뛰어넘어서 부처님의 계율로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妄想)의 선과 악을 판단하여 모든 수행의 바탕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계율이 바탕이 되어 선과 악을 잘 판단하는 일이다.

2>자기 마음의 기능을 잘 살펴서 아는 일이다.
마음의 기능이란 五蘊의 기능을 말한다. 살펴서 아는 것에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즉 分別에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번뇌를 증장시키는 분별이다. 내면에 생각이 일어날 때에 그 생각에 휩슬리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강물이 불어나듯 번뇌가 증장됨을 말한다. 둘째는 空性으로 引導하는 분별로서 번뇌를 줄여가는 분별(觀想分別)이다. 五蘊을 잘 분별하는 것은 五蘊의 기능이 三界이므로 곧 三界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이 분별작용은 어떤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의 일어나게 된 인연을 잘 분별하고 그 경과와 결과도 잘 관찰하여 분별한다. 그리고 이 분별작용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일의 인과를 잘 분별해야 된다. 물론 일이란 모두 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 것도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별도 무엇을 근거하는가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분별력은 여러가지로 작용하는 마음의 기능을 아는 데에 있다. 단순히 인과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 때문에 분별의 기준은 최소한 존재(五蘊의 기능)가 無常하고 無我이며 苦이고 空임을 알고 있어야한다.
例를들자면 보통 사람들은 담배을 습관적으로 피우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남에게 나뿐 영향을 주기도한다. 그러나 이 담배가 나쁘다고할 때 끊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생각이 습관적인 집착심에 기인할줄도 모르고 계속해 간다. 그리하여 실생활에서 계속 나와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러나 이것이 無常,無我,苦,空인줄을 알면 담배가 좋지못한줄을 알아서(分別) 끊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과 같이 , 자신의 습관적인 집착심을 끊어가게 된다. 이 분별의 힘(三法印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면에 일어나는 생각과 일상생활의 일을 제대로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교리를 듣지않은 사람은 명상에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여러가지 일어나는 번뇌의 모습을 분별할 수 없을 뿐아니라 그것에 대한 올바른 사유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수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3>그 번뇌의 기능에 따라 방편을 사용하여 번뇌를 다스린다. 즉 對治邪執이다. 습관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팔정도등의 수행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명상을 해도되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을 말한다. 비파사나禪이나 看話禪등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例를들자면 앞 단계에서는 담배가 무익함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면 그에 따라 방편을 세워서 담배에 대한 생각을 對治할 수 있다. 즉 어떻게 하면 그 담배를 끊어버릴 수있다는 것이 세워지기때문이다. 이와같이 번뇌를 다스려서 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禪修行이다. 止觀에 의해서 對治한다는 말이다.
散亂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數息觀과 隨息觀을 한다. 淫慾이 강한 사람은 不淨觀을 한다. 瞋心이 많은 사람은 慈悲觀을 한다. 睡眠이 많는 사람은 光明觀을 한다. 愚癡하고 我慢이 가득찬 사람은 十八界觀을 한다. 이러한 觀法은 모두 話頭 즉 空性을 체험하기 위한 直觀이다.

4>이 네번째의 단계에서는 空性을 체험하여 見性하는 단계이다.
對治邪執을 하게되면 마음의 평정을 얻겠되어 마음의 본질이 空性임을 체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수행의 모든 방편은 空性을 보는 것(見性)을 통해서 완성되어 간다. 이때 비로소 話頭(空性)를 보게된다. 즉 見性이다. 話頭를 본다는 것은 空性에 마음이 집중되어 있음을 말한다. 항상 話頭(心)를 보는 것이 看話頭다.

5>空性을 체험하면 마음의 기능인 五蘊을 잘 이용하여 衆生救濟를 위한 大悲心으로 轉換하게 된다.
말하자면 大悲心이 일어나서 衆生救濟의 활동을 하게된다. 즉 煩惱를 慈悲種子로 바꾸어서 다른 사람을 解脫케한다. 모든 慈悲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空性에 이르게 하는데에 있다. 말하자면 空性의 작용이 慈悲心이다.
大乘의 修行은 항상 大悲心을 동반한다. 이 大悲心은 처음 수행에 들어갈때부터 자비심을 닦는다. 계율을 배울때 자비심을 배운다. 사실 깨달음도 慈悲心을 위해서 있다.

*이 수행의 단계는 어느 수행방법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가령 看話禪이나 止觀修行을 하더라도 이 다섯단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三業> <三種般若><八正道> +----<聞>-----正見------외부로부터 법문을 받아들이므로해서(聞) 正見은 선다(立). 여기서 正見
| 이란 三法印을 잘 아는 것이다. 즉 부처님이나 菩薩, 祖師의 敎說을 듣는
| 것에 의해서 正見이 생긴다. 말하자면 스승의 正見을 말한다. 그러나 스승
| 이 없이도 正見을 세울 수 있다. 現象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無情說法과 같
| 은 경우이다. 이때의 現象이 스승이 되어서 三法印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意)-+ 現象에게 그 법문을 듣는 것이다. 말하자면 최소한 三法印을 알고 있어야만
| 이 바른修行을 할 수 있다.
|
|
|
+----<思>-----正思惟-----認識對象이 現前할 때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대상을 正見 즉 三法
印을 바탕으로 해서 사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의 屬性이 三法
印이기 때문이다. 이 사유훈련을 통해서만이 현상에 대한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

(語)-----------+---正語-------正見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三法印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 眞實語이다.
|
+---------+---正業-----여기서 業이란 行爲를 말한다.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그것의 바탕이 무상,
| | 고,무아임을 잘아아 집착심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예를들자면 남을 도
| | 와 주는 것도 三法印을 모르고 행한다면 福을 지어서 천상이나 인간세상에
| | 태어남을 얻을 수 있으나 生死解脫을 할 수 없다. 때문에 三法印에 근거한 布
| | 施行은 無住相布施가 되고 應無所住而生起心이 된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正見
| | 이 살아있는 것이 正業이다.
| |
+---------+---正命-----邪命에는 智度論卷十九에 5가지가 있음을 들고 五種邪命을 말하고 있다.
| | 즉, 큰 재물을 얻기 위해 {(1)거짓으로 기이한 相을 나타낸다. (2)자기의 공
| | 덕을 늘어 놓는다. (3)吉凶을 점친다. (4)큰 소리를 내어 위협한다. (5)자기
(身)-| | 에게 공양 바치는 것을 칭찬한다.}등을 들고 있다. 또 四邪命食이 있다. 이
| | 는 不淨한 생활법이다. (1)下口食. 논과 밭을 경작하여 생활하는 것. (2)仰
| | 口食. 天文學을 연구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것. (3)方口食. 돈 많은 사람이나
| | 벼슬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여 생활하는 것. (4)維口食. 呪術이나 占치고
| | 觀相보는 것을 배워 다른 사람의 吉凶禍福을 말하여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 | 원래 比丘는 乞食을 하여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수단으로 생활하는 것을 모
| | 두 邪命食이라고 한다.(佛敎學大辭典 653,665) 그러므로 正命은 탁발이다.
| | 중국총림에서는 淨人을 통하여 衣食를 해결한다.
| |
+---------+---正勤-----바른 노력, 수양, 정진(未生의 惡이 생기지 않게 努力하는 것, 已生의
| 惡은 그것을 꾾어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 未生의 善은 일어나게 노력하는
| 것, 已生의 善은 더욱더 增大하려고 노력하는 것의 四種(四正勤)을 행하는
| 일.), 그리고 戒定慧三學.
|
<修>-+-(매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念佛
| 활동내용) +-念法
+---------+---正念-----六念處(평정한 마음)--+-念僧
| | (念이란 마음을 그곳에 두어 +-念戒
| | 잃지 않고 계속 지켜 가는 +-念天---天上을 念하는 것. 천상의 사람은 우리보
| | 것을 의미 한다.) | 다 복과 지혜가 좋기 때문이다.
(意)-+ | +-念捨---집착이 없는 평정한 마음을 지켜가는 것으
| | | 로 이때는 앞의 다섯가지 조차도 없이
| | |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상태이다.
| | |
| | |
| +---------+---正定-----捨의 마음이 계속되는 것을 말함.
+--*正定의 意는 고요해진 상태이다.

*八正道는 同時에 修行한다. 한 생각을 관찰하는 가운데 이 八正道가 들어 있다.
*한 생각(妄念)이 일어날때 마다 팔정도를 반복해서 닦아야 한다.
*이 八正道는 根本佛敎의 八正道을 基本으로한 것으로 자비심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우선 안다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살펴서 아는 것에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즉 分別에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번뇌를 증장시키는 분별이다. 내면에 생각이 일어날 때에 그 생각에 휩슬리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강물이 불어나듯 번뇌가 증장됨을 말한다. 둘째는 空性으로 引導하는 분별로서 번뇌를 줄여가는 분별(觀想分別)이다. 분별의 대상은 五蘊이므로 五蘊을 잘 분별해야 한다. 五蘊의 기능이 三界이므로 곧 三界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이 분별작용은 어떤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의 일어나게 된 인연을 잘 분별하고 그 경과와 결과도 잘 관찰하여 분별한다. 그리고 이 분별작용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일의 因果를 잘 분별해야 된다. 물론 일이란 모두 이 마음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 인과에 대한 분별이란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별이 무엇을 근거하는가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분별력은 여러가지로 작용하는 마음의 기능을 잘 분별하여 아는 데에 있다. 단순히 인과에 대한 분별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 때문에 분별의 기준은 최소한 존재(五蘊의 기능)가 無常하고 無我이며 苦이고 空임을 아는 것이어야 한다.
例를들자면 보통 사람들은 담배을 습관적으로 피우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남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도한다. 그러나 이 담배가 나쁘다고 할 때 끊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생각이 습관적인 집착심에 기인할줄도 모르고 계속해 간다. 그리하여 실생활에서 계속 나와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러나 이것이 無常,無我,苦,空인줄을 알면 담배가 좋지못한줄을 알아서(分別) 끊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과 같이 , 자신의 습관적인 집착심을 끊어가게 된다. 이 분별의 힘(三法印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면에 일어나는 생각과 일상생활의 일을 제대로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교리를 듣지않은 사람은 명상에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여러가지 일어나는 번뇌의 모습을 분별할 수 없을 뿐아니라 그것에 대한 올바른 사유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수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자신 속에 일어나는 번뇌를 잘 알았다면 그 다음은 번뇌의 기능에 따라 방편을 사용하여 번뇌를 다스려야 된다. 즉 對治邪執이다. 습관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즉, 죄의 소멸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러가지 번뇌의 業性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팔정도등의 수행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명상을 해도되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을 말한다. 비파사나禪이나 看話禪등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例를들자면 앞 단계에서는 담배가 무익함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면 그에 따라 방편을 세워서 담배에 대한 생각을 對治할 수 있다. 즉 어떻게 하면 그 담배를 끊어버릴 수있다는 것이 세워지기때문이다. 이와같이 번뇌를 다스려서 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禪修行이다. 止觀에 의해서 對治한다는 말이다.
散亂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數息觀과 隨息觀을 한다. 淫慾이 강한 사람은 不淨觀을 한다. 瞋心이 많은 사람은 慈悲觀을 한다. 睡眠이 많는 사람은 光明觀을 한다. 愚癡하고 我慢이 가득찬 사람은 十八界觀을 한다. 이러한 觀法은 모두 話頭 즉 空性을 체험하기 위한 直觀이다.
*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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