緇門警訓
▶ 原 序
道本無言, 因言顯道, 此三敎之書, 所由作也.《緇林寶訓》, 舊版不存, 皇慶癸丑, 余因募緣, 重爲鋟梓. 乃掇遺編斷簡中, 君臣道俗, 凡可以激勸訓誡者, 頗增入之, 目曰《緇門警訓》, 庶廣學者見聞. 至得意忘言之時, 則區區之志, 豈徒然哉!
吳城.西幻住庵, 比丘永中謹識.
도道는 본래 말(言)이 없으나 말로 인해 도가 드러나는 것이니, 이는 삼교三敎의 서적들이 지어지게 된 연유이다.《치림보훈》의 옛 판본이 남아 있지 않음에 황경 연간의 계축년에 인연이 모였기에 내가 다시 판각하였는데, 흩어지고 빠진 문장들을 모아 정리하는 가운데 군신君臣이나 도속道俗의 격려되고 훈계될 수 있는 것들을 제법 삽입하여 그 제목을《치문경훈》이라 하였으니, 널리 배우고자 하는 자들은 보고 익히기를 바란다. 뜻(意)을 얻고 말(言)을 잊기에 이르러서는 곧 구구한 생각들이 될 뿐이겠지만, 어찌 그것이 헛되다고만 할 것인가?
오성 서환주암 비구 영중永中이 삼가 쓰다.
▶ 緇門警訓序
盡大地人, 誰無佛性, 誰無信心. 然, 不遇聖敎, 則不發無上菩提之心, 長沈苦海, 頭出頭沒, 虛生浪死, 實可憫也. 是以, 佛祖聖賢, 作不請友, 行無緣慈, 爲說種種方便, 敎化調伏, 令其生淨信心, 成就無上佛果‧菩提. 佛果‧菩提, 豈異事乎! 正是當人本覺心也.《大經》亦云: 「欲知如來大涅槃者, 當須了知根本自性.」 若人深信此語, 忽然反顧, 則卽知自心, 無量妙義‧百千三昧, 本自具足, 分毫不謬, 此是正信心也. 三世聖賢, 出現於世, 無言語中而起言說, 正謂此耳. 太古南游求法時, 幸遇斯《警訓》, 將歸本土, 意欲廣宣流布, 利國利人, 有年矣. 今有勝士明會與道庵, 發大誓願, 廣化檀緣, 鏤板印施, 俾國人一見一聞, 皆結勝因, 畢竟, 同成無上正覺. 此, 斯《警訓》之大義歟!
戊午正月初吉, 三韓國尊.小雪山.利雄尊者謹序.
온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가 불성佛性이 없을 것이며 그 누가 신심信心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면 위없는 보리菩提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길이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머리를 내밀었다 디밀었다 하며 공허하게 살다가 헛되이 죽을 것이니 참으로 가련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과 성현들이 청하지 않은 벗이 되고 인연이 없는 자비를 행하여 갖가지 방편을 말씀함으로써 교화하고 다독거려 청정한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고 위없는 불과佛果와 보리菩提를 성취하게 해 주었다. 불과와 보리가 어찌 별다른 것이겠는가? 바로 그 사람의 본디 깨달은 마음(本覺心)인 것을.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여래의 대열반大涅槃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근본 자성自性을 이해하여 알아야 한다」 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이 말을 깊이 믿어서 문득 돌이켜 본다면 곧 자기의 마음에 무한한 묘의妙義와 백천가지 삼매三昧가 본디 갖추어져 있어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올바른 신심信心이다. 삼세三世의 성현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말할 것이 없는 가운데서 말씀을 일으켰다 하였으니, 바로 이를 일컫는 것이다.
내(太古)가 남방을 다니며 법을 구할 때에 다행히 이《경훈》을 얻어서 본국으로 돌아옴에, 널리 유포시켜 나라와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자 한지가 여러 해였다. 이제 뛰어난 선비인 명회明會와 도암道庵이 있어서 큰 서원誓願을 내고 널리 단월檀越의 인연을 받아들여 판각하고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한 차례 보고 듣게 함에 모두 훌륭한 인연이 맺어지고 결국에는 다 함께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覺)을 이루게 될 것이니, 이것이 이《경훈》의 큰 뜻이다.
무오년 정월초 길일吉日, 삼한국존 소설산 이웅존자가 삼가 서문을 쓰다.
▶ 序
蓋衆生之根欲性殊, 若一以論之, 恐非得旨也. 故, 丈夫自有衝天志, 不向如來行處行, 是也; 非佛之言不言, 非佛之行不行, 亦是也. 等空法界焉有「是‧不是」? 而言「是‧不是」乃是妄想的分別, 旣有此分別, 自有是非的說話. 觀那古之明心見性的祖師, 擧皆博學大家, 曹溪之不識文字云者, 不似今時禪客之根銀不識者; 又觀那執麈搖松之高座, 盡是宗說兼通, 泰沼之不聽半徧云者, 何如今之講家水乳不辨者乎! 此書自支那而朝鮮而行于緇門之中者, 久矣. 於古則三券, 猶謂之略, 今則爲繁而略之爲一券, 學之者又謂之爲繁, 而又略之必矣. 若如是, 則將見此書未生前之時節, 亦不遠. 雖得不立文字之旨, 有乖受持讀誦之訓, 致使卽心卽佛之妙密旨趣, 反爲撥無因果者之口實. 古德頌云: 「深嗟末法實悲傷, 佛法無人得主張. 未解讀文先坐講, 不曾行脚便陞堂. 將錢討院如狂狗, 空復高心似啞羊.」 彼果是能知未來劫事之聖者歟? 何其寫得末法今日之事情, 如此其深且切哉! 震湖講伯以善巧方便, 觀根逗機, 略之爲一券而懸吐之, 至於註中亦懸吐, 於孟浪處則筆削之, 庶使不惱其惱而輒易解之, 可謂老婆心切矣. 請余校之, 遂不揆不才, 敢妄閱之, 不覺於藏識中, 引起衆生根欲性殊之感. 書之於此, 庶幾不至略之又略, 至于無略, 而爲流通之一助云哉.
丙子春, 法輪寺.雪醐山人.草牛堂.卞榮世謹識.
대저 중생은 그 근기와 욕망의 품성이 서로 다르기에 만약 하나 된 생각으로 이를 논한다면 아마도 그 요지를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장부는 하늘을 찌를 듯한 의지를 스스로 지니고 있으니, 여래행如來行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채 처신하고 행위 하는 것도 그것이요, 부처님의 말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부처님의 행위가 아니면 행하지 않음도 역시 그것이다. 허공과 같은 법계에 어찌 옳고 옳지 않음이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옳고 옳지 않음을 말한다면 이는 곧 망상에 의한 분별이니 이러한 분별이 있게 되면 시시비비의 말들이 저절로 있게 된다.
마음을 밝혀 견성한 저 예전의 조사들을 보면 거의 모두 배움이 넓은 대가들이었으니 조계선사가 글을 알지 못하였다 운운하지만 지금의 선객들이 근根 자와 은銀 자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며, 또한 총채를 잡고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저 높은 법상을 보면 모두 으뜸의 이치와 명쾌한 설명을 겸하여 꿰뚫었으니 태소대사가 반절도 듣지 못하였다 운운하지만 어찌 지금의 강사들이 물과 우유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겠는가.
이 책은 중국에서 시작하여 조선에 들어와 불가에서 쓰여진지 오래 되었다. 예전에는 세 권이었으나 오히려 간략하다 말하였는데, 지금은 번거롭다 하여 한 권으로 줄였음에도 이를 배우는 이들이 또 번거롭게 여겨 다시 간략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곧 이 책이 생겨나기 전의 시절을 볼 수 있음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불립문자의 요지를 얻었다 하더라도 받아 지녀 독송하는 가르침에 어그러짐이 있으면 설사 마음이 곧 부처라는 오묘한 으뜸의 이치라 하더라도 도리어 인과법을 무시하여 물리치는 자의 구실이 될 뿐이다. 고승대덕이 송頌하여 이르기를 「말법임을 깊이 탄식할 새 실로 슬프고도 상심하나니, 그 누구도 불법을 얻어 주재하는 이 없구나. 읽은 글월 이해도 못한 채 성급히 강백의 자리에 앉으며, 일찍이 행각도 경험하지 못한 채 별안간 설법의 자리로 올라선다. 돈을 가지고 도량을 거론함이 마치 미친개와 같고, 빈배에 마음만 높음은 흡사 벙어리 염소와 같다」 하였으니, 그는 과연 미래겁의 일을 능히 아는 성자였던가? 그가 쓴 오늘날 말법의 사정이 어찌 이와 같이 깊이 있고도 또한 적절하단 말인가!
안진호 강백이 뛰어난 방편으로써 뿌리 되는 것은 들여다보고 거짓된 것은 피하여 한 권의 책으로 간략히 하고 토를 달았으며, 심지어 주석에도 토를 달고 엉터리없는 곳은 손을 보아 삭제함으로써 고민스러운 곳은 고민스럽지 않게 하여 쉽고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노파심이 가히 절실하다 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의 교감을 요청함에 마침내 재주 없음을 살피지 않고 감히 망령되게 그것을 살펴보다가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중에 중생의 근기와 욕망의 품성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이 일게 되었다. 이 책이 여기에서 지극히 간략화 된 것이 또다시 간략화 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결국에는 간략화 하지 않은 채 다만 보다 널리 보급되는데 조그만 도움이나 되고자 한다.
병자년 봄, 법륜사의 설호산인 초우당 변영세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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