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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
관리자 [등록일 : 2003-10-09 오후 9:2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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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60권본 제 11~2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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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60권본 제 11~20권
대방광불화엄경 제11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한역
이운허 번역
17. 공덕화취보살십행품(功德華聚菩薩十行品) [1]
그 때 공덕림보살마하살은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잘 항복 받는[善伏]삼매에 들었다. 그리하여 시방으로 각각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세계를 지나 그 밖에 있는 만 부처 세계 티끌 수의 부처님을 보았는데, 그 여래의 명호는 모두 공덕림이라 하였다.
때에 그 부처님들께서 공덕림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다. 불자여, 그대는 그 선복 삼매에 들 수 있었구나. 시방의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그대에게 신력을 가하셨기 때문에 그대는 그 삼매에 들 수 있으며, 그것은 또 노사나부처님의 전생 원력과 그 신력과 그리고 모든 보살의 선근의 힘이 그대로 하여금 매우 깊은 법을 널리 연설하고 또 일체의 지혜를 기르며, 중생들 성품을 분별하고 일체의 장애를 떠나 장애 없는 경계에 들며, 일체 방편을 성취하고 일체종지를 성취하며, 모든 법을 깨닫고 모든 근성을 잘 알고 일체 법을 들어 지니게 하려는 것이니 이른바 보살의 열 가지 행이니라. 불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묘한 법을 두루 연설해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그 부처님들은 곧 공덕림보살에게 장애가 없는 법과 편안히 머무르는 법, 스승이 없는 법, 우치가 없는 법, 난잡하지 않는 법, 청정한 법, 한량없는 법, 가장 뛰어난 법, 번뇌 없는 법, 물러나지 않는 법 등을 주었으니, 왜냐 하면 그것은 그 삼매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부처님들께서 각기 오른손을 내밀어 공덕림보살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공덕림보살은 곧 삼매에서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말했다.
“불자들이여, 보살의 행업은 불가사의하여 광대하기 법계와 같고 마침내는 허공계와 같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삼세 부처님의 행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행인가.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행이 있는데 그것은 삼세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첫째는 기뻐하는 행이요, 둘째는 이롭게 하는 행이며, 셋째는 성냄과 원한이 없는 행이요, 넷째는 다함이 없는 행이며, 다섯째는 우치와 산란을 떠난 행이요, 여섯째는 잘 나타나는 행이며, 일곱째는 집착이 없는 행이요, 여덟째는 존중하는 행이며, 아홉째는 좋은 법의 행이요, 열째는 진실한 행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 행(行)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기뻐하는 행인가. 이른바 그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보시할 때에,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에게 보시하되 보시한 뒤에는 후회함이 없고 그 과보를 바라지 않으며,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만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일체 중생을 포섭하며,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부처님의 전생의 행을 배우며, 부처님의 전생의 행을 바로 기억하고 부처님의 청정한 전생의 행을 얻으며, 부처님의 전생의 행을 받들어 지니고 부처님의 전생의 행을 나타내며, 부처님의 전생의 행을 두루 연설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뿐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기뻐하는 행입니다.
그 보살이 기뻐하는 행을 닦을 때는 일체 중생들이 기뻐하여 그를 사랑하며 공경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나라에 빈궁한 곳이 있으면 그는 그곳에 태어나되 호사스럽고 큰 부자로서 재보가 다함 없어, 잠깐 동안 무량 무변한 중생들이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인자님, 우리는 빈궁하여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하면 그는 잠깐 동안에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 다 만족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그 보살은 그 요구 때문에 그것을 번거롭게 여겨 괴로워하지 않고 다만 위없는 자비심을 내어 보시하되 싫증이 없으며, 그들을 늘 오게 하여 그들이 오면 칭찬하고 더욱 기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좋은 이익을 얻었다. 이 중생들은 내 복밭이요, 내 착한 벗으로서 내가 청하거나 구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와서 가르쳐 내 마음을 일으켜 불도를 수행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렇게 배우고 닦아 저들을 다 기쁘게 하리라.
나는 삼세에서 닦은 공덕으로 청정한 법신을 빨리 이루고 신력이 자재하여 중생들의 요구를 따라 모두 기쁘게 하리라. 그리고 그 공덕으로 한량없는 그들을 다 정각을 이루게 하여 제도해 해탈시키고 끝내는 남음 없는 열반을 얻게 하리라.
나는 먼저 일체 중생의 모든 소원을 만족시키고 그 다음에 나는 등정각을 이루어, 나라는 생각[我想]과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 내 것이라는 생각[我所想], 수명이라는 생각[壽命想], 여러 가지라는 생각[種種想], 복가라(福伽羅)라는 생각, 짓는 이라는 생각[作者想] 등을 버리고, 법계와 중생계는 공(空)이어서 차별이 없음을 알고, 탐욕의 법과 진실이 아닌 법, 소유가 없는 법, 견고하지 않은 법, 의지할 것 없는 법, 지을 것이 없는 법등을 모두 버리자.'
보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 그는 보시하는 이도 보지 않고 그것을 받는 이도 보지 않으며, 그 재물도 보지 않고 복밭도 보지 않으며, 업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으며, 큰 과보도 보지 않고 작은 과보도 보지 않습니다.
보살은 삼세를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엾어라. 중생들은 우치에 덮이고 번뇌에 얽매어 항상 생사의 고통바다를 흘러다니면서 견고하지 않은 법에서 견고함을 얻지 못하고 있구나. 나는 모든 부처님이 배운 것을 다 배워 중생들을 이롭게 한 뒤에 등정각을 이루고, 일체 중생을 깨우쳐 모두 청정하게 하고 적멸한 이치를 따라 삼세의 법을 관찰하리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첫째 기뻐하는 행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둘째인 이롭게 하는 행인가. 이른바 그 보살은 계율을 깨끗이 지녀,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법[法] 등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모든 중생을 위해서도 집착 하지 않는 법을 연설하며, 인간과 천상의 훌륭하고 부귀한 집에 나기를 구하지도 않고 이익을 구하지도 않으며, 단정하기를 구하지도 않고 제왕이 되기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다만 깨끗한 계율을 굳게 지키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깨끗한 계율을 지녀 일체의 얽맴과 번뇌의 맹렬한 불과 근심·슬픔·고뇌 등을 떠나, 중생들을 저버리지 않고 모든 부처님들을 기쁘게 하며,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리라'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깨끗한 계율을 지닐 때, 가령 하루 동안에 무량 무수한 아승기의 큰 마왕이 각각 무량 무수한 아승기의 천녀들을 데리고 오는데, 그녀들은 모두 몸이 단정하고 얼굴이 뛰어나게 묘하며, 요염한 자태는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며, 또 일체의 오락 도구를 가지고 와서 보살의 도심(道心)을 어지럽히려 합니다.
그 때 그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 다섯 가지 쾌락은 도법을 방해하고 위없는 보리까지 장애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한 생각의 욕심까지도 내지 않고 그 마음이 깨끗한 부처님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만은 거기서 예외입니다. 보살은 마음에 보살의 일체 종지를 버리지 않고 바른 생각을 굳건히 하여 다섯 가지 욕심의 인연 때문에 한 가지의 나쁜 생각을 일으켜서도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는 신명을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는 일이란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살은 부처님을 뵈온 뒤로는 일찍 한 번도 욕심을 일으킨 일이 없는데, 하물며 실제로 행했겠습니까.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 보살은 생각합니다.
'중생들은 오랜 동안 생사 가운데 있으면서 오욕을 생각하고 오욕을 행하며 오욕을 즐긴다. 그리하여 그 마음은 항상 오욕의 경계에 흘러다니고 오욕에 빠져 있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즉, 모든 마왕과 그 권속 천녀들과 중생들을 위없는 계율에 머물게 하고 청정한 계율에 머문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지위와 일체 종지와 등정각과 내지 무여열반을 얻게 하리라. 왜냐 하면 이것은 우리의 할 일이요, 모든 부처님이 이렇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온갖 나쁜 행과 나[我]라고 헤아리는 무지를 버리고 모든 부처님의 평등하고 깊은 법을 관찰하며, 일체 지혜를 얻고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뒤바뀐 생각이 있지도 않고 뒤바뀐 생각을 떠나 중생이 있지도 않으며, 뒤바뀐 생각 속에도 중생은 없고 중생 속에도 뒤바뀐 생각은 없으며, 뒤바뀐 생각이 곧 중생도 아니요 중생이 곧 뒤바뀐 생각도 아니며, 뒤바뀐 생각은 안의 법도 아니요 뒤바뀐 생각은 또 밖의 법도 아니며, 중생은 안의 법도 아니며 중생은 또 밖의 법도 아닙니다.
모든 법은 다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고 잠깐도 머무르지 않으며 견고하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요술과 같아서 우치한 범부를 속이는 것이니, 모든 법은 꿈과 같고 번개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알면 그는 생사를 통달하고 보리를 완전히 얻어, 제도하지 못한 이는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이는 해탈하게 하며, 조복하지 못한 이는 조복하게 하고 고요하지 못한 이는 고요하게 하며, 안온하지 못한 이는 안온하게 하고, 번뇌를 떠나지 못한 이는 번뇌를 떠나게 하며, 청정하지 못한 이는 청정하게 하고, 열반을 얻지 못한 이는 열반을 얻게 하며, 즐거움을 얻지 못한 이는 줄겁게 할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나는 세간의 온갖 일을 버려 여래를 다 기쁘게 하고 모든 불법을 원만히 성취하여 위없이 가장 뛰어난 법 안에 편히 머무르자. 그리하여 일체 중생을 평등히 바로 관찰하고 모든 법을 분별해 잘 알아 온갖 악을 멀리 떠나고 허망을 아주 버리어, 모든 번뇌와 습성을 없애고 해탈하는 묘한 방편을 성취하고 무량 무변한 변재를 모두 얻으며, 매우 깊고 공적한 지혜를 성취하리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둘째의 이롭게 하는 행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셋째의 원한이 없는 행인가. 그 보살은 항상 인욕하는 행을 잘 닦아 스스로 겸허하고 남을 공경하며, 유순한 얼굴과 정다운 말로써 스스로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을 함께 해치지도 않으며, 스스로도 칭찬하지 않고 남도 칭찬하지 않고 둘을 함께 칭찬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옳다 하지 않고 남도 옳다 하지 않고 둘을 함께 옳다 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찬탄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체 악을 떠나게 하되, 탐욕과 분노와 우치·교만·산란·인색·질투·아첨·속임 등을 끊고 큰 인욕의 법에 편히 머물게 하리라.'
보살이 이런 청정한 인욕의 법을 성취하면, 가령 무량 무수한 중생이 있는데, 그 중생은 각각 무량 무수한 권속이 있으며, 그 낱낱 중생들은 각각 무량 무수한 머리를 변화해 가지고 그 머리에는 무량 아승기의 혀가 있으며, 그 혀는 무량 무수한 나쁜 소리를 다 내고 그 소리는 무량 무수한 욕설을 내어 보살을 헐뜯고 천대하며, 또 그 중생들이 각각 무량 아승기의 손에 무량 무수한 칼이나 막대기를 들고 그 보살을 때리며, 욕하고 해치기를 내지 무량 아승기겁 동안 쉬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살은 그런 고초를 당할 때에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이런 고통을 당한다 하여 성내는 마음을 낸다면 그것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며,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며, 스스로 선정을 닦지 못하고 스스로 진실하지 못하며, 스스로 그 몸을 사랑하는 것이니, 어떻게 저들을 기쁘게 하여 해탈을 얻게 하겠는가.'
그리고 그는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 몸과 마음 때문에 한량없는 겁 동안 온갖 고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거듭 자기를 격려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마음을 잘 거두어 잡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위없는 법에 편히 머물러 중생들도 그 법을 얻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이 몸은 공적한 것이어서 거기는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으며, 진실한 성품도 없고 성품이 공(空)해 둘이 없으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법이 공하기 때문이니, 나는 그것을 잘 알아 남에게 두루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런 고초를 당하더라도 참고 견뎌야 할 것이니, 그것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요, 그들을 이롭게 하려 하기 때문이며 그들을 안온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요, 그들을 포섭하려 하기 때문이며 그들을 버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고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도 부처님의 행하신 법을 닦아야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셋째의 원한없는 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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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12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