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法句經) 해제
35세 때 성도(成道)하신 후, 80세 때 열반에 드시기까지 부처님께서는 중생제도를 위해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계속하셨고, 심지어 구시나갈라(拘尸那揭羅)에서 위대한 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도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부처님께서는 35세에서부터 80세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중생과 함께하시면서 중생에게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거룩한 지혜의 말씀을 하셨으니 그 말씀의 양도 막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은 글로 옮기지 못하고 다만 기억에 의존해 구두로 전해졌을 뿐이었다. 부처님 당시에 문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많은 학문적 소양을 구비한 제자들이 있었지만 끝내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것은 부처님 재세(在世)시에는 가르침이 보다 실천적이고 직접적으로 전해져 그 필요성이 그리 크게 인식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위대한 열반에 드신 후, 망연함과 상실감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막대한 가르침을 정리해 보전ㆍ계승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자들과 후학들은 몇 차례 한자리에 모여 앉아 거의 반세기 동안 설해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작업을 결집(結集, Samgit?)이라 한다. 그런데 결집에 해당하는 원어 Samgit?는 요즘 말로 하면 합창(合唱)한다는 뜻이므로 처음에는 문자로 옮기기 전에 한소리로 합창하도록 정리ㆍ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몇 차례 결집이 거듭되고 또 장구한 시간이 경과되는 동안, 부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이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표현됨에 따라 순수한 부처님 말씀이 아닌 내용도 상당히 가미되었는데 이런 가운데서도 비교적 부처님의 말씀에 가장 근접한 성격을 띤 불교문헌이 바로 『법구경(法句經)』이라 할 수 있다.
말씀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을 한역하여 진리를 법(法)으로, 말씀을 구경(句經)으로 대치시켜 『법구경(法句經)』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법구경』의 원전(原典)은 남방상좌부(南方上座部) 계통의 경장(經藏:十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주로 단독(憺)의 게송(偈頌)으로 되어 있었으나, 때로는 두 개의 게송, 또는 여러 개의 게송이 한데 묶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법구경』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정한 시기에 어느 특정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법구경』은 원시 불교교단 안에서 여러 형태로 널리 유포되고 있던 시구들 가운데서도 가장 교훈적(敎訓的)이고 아름다운 시구(詩句)만을 골라 엮은 정화(精華)로서 편집 시대는 대충B.C. 3ㆍ4세기경으로 추정되지만 게송 가운데에는 3ㆍ4세기보다 오랜 기원을 가진 것도 있다.
『법구경』의 총 게송 수는 423개이고 이 게송들은 26장으로 나누어 편집되어 있다. 이 경의 내용은 불교의 논리적 교의(敎義)를 담고 있어 불교 입문(入門)의 지침서로 널리 각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불교경전 가운데서도 특히 이 『법구경』이 예로부터 부처님의 참뜻을 그대로 전한 경전으로서 널리 암송되어졌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 경전은 편찬자와 그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관계로 『법구경』을 대본으로 한 경전과 이본(異本)도 많이 남아 있다. 먼저 환상(幼想)에 가까운 탁월한 상상력과 풍부한 시적인 소질을 가졌던 인도의 문학적 천재들은 당시 널리 애송되고 있던 주옥같은 『법구경』을 대본으로 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고, 이와 같이 하여 새롭게 등장한 것이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이다. 이외에도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ㆍ『출요경(出要經)』 등의 『법구경』 계통의 경전이 있다. 또 여러 이본(異本)이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한역 『법구경』은 A.D. 1ㆍ2세기 경 법구(法救)라는 스님에 의해 편집된 것인데 A.D. 224년 지겸(支謙)ㆍ축장염(竺將焰)에 의해 한역되었다. 그런데 팔리본은 총 게송수가 423개인데 반해 이 한역본은 26장 500게송의 원전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곳에서 13장 250게송을 보충하여 싣고 있다.
② 다음으로 대중부(大衆部) 계통의 설출세부(說出世部) 소속의 대사(大事:mahavastu)에는 『법구경』 천품(千品)이 인용되고 있는데 대개 그 연대를 B.C. 2세기나 1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③ 또 19세기말, 코오탄 지역에서 간다라어로 편찬된 『법구경』이 프랑스 학자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이것을 간다라어 『법구경(Gadh?r? Dharmapada)』이라고 부른다. 이 경의 원본은 540게송 정도로 추정되나 현존하는 것은 26장(章) 350게송 정도에 불과하다.
④ 설일체유부에서는 이 『법구경』에 해당하는 경전을 우다나품(Ud?navarga)이라고 부르는데 명칭만 우다나품이지 내용과 구성은 팔리어 계통의 『법구경』과 매우 유사하다. 이 문헌 역시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 유럽학자들에 의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되어 정리ㆍ발표되었다. A.D. 1ㆍ2세기 경 달마트라타(Darmatrata)에 의해 찬술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우다나품은 33장으로 분류되어 있고 게송의 수도 훨씬 많다.
⑤ 티벳어 우다나품은 동일한 역자(譯者)에 의해 게송의 일부만 따로 수록되기도 했다가 9세기 인도학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티벳역본은 우다나품과 같은 3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내용도 팔리어 『법구경』보다는 우다나품에 더욱 가깝다. 이밖에 팔리본을 직접 번역한 영역본(英譯本)과 독역본(獨譯本) 등이 있다.